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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ary Vision <Performante>
트리플에스(tripleS)
2024

by 한성현

2024.11.07

이번에는 ‘춤’이다. 팬 투표를 통한 유닛 조합 걸그룹 트리플에스가 24인 완전체 < Assemble24 >에 이어 12인조 비저너리 비전, 일명 ‘VV’로 돌아왔다. 비교적 추상적인 개념을 화두로 던졌던 지난 활동과는 달리 < Performante >는 사실상 K팝의 동의어인 대규모 군무와 퍼포먼스를 근간으로 삼았다. 팀의 핵심이었던 아마추어리즘의 미학을 벗고 기성 판도의 중심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로 읽게 된다.

역대 타이틀곡이 대체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팝 트랙이었던 반면 ‘Hit the floor’는 최근 K팝 세태에 맞춰 하드한 힙합을 장르로 택했다. 올드스쿨 붐뱁 비트는 장르적으로 영파씨와 엔믹스가 떠오르고, 그 위를 채운 묵직한 베이스와 요란한 이펙트는 각각 에스파의 ‘Armageddon’이나 라이즈의 ‘Siren’이 생각난다. 과격한 안무를 보여주려는 전략으로는 이해가 가나 정작 가사가 콘셉트 변신을 따라가지 못해 균열이 크게 벌어진다.

도입부의 ‘오만과 편견 나의 미모’부터 ‘호수 위에 도도한 저 백조들처럼’, 그리고 특히 후렴의 ‘바람 뚫고 우린 달려가’와 같은 표현은 평범한 한국 청소년과 화려한 아이돌 사이에 서 있는 트리플에스의 화법이다. 즉 지금 그들에게 어울리는 말투는 아니다. 결과를 보여줘야 할 타이밍에 ‘Rising’과 ‘Girls never die’에서 들려줬던 과정의 전시를 고수하는 데다 ‘강해 Invincible’ 등 유독 유치한 디스코그래피 인용까지 덧붙이니 심지 굳은 표정, 억센 억양과는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다.

트리플에스는 매번 특정한 아이디어를 정해놓고 유닛을 구축하는 팀이다. 따라서 이들은 좋은 곡의 수집을 넘어서 음악과 자체 설정한 지향점의 일치 여부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신세에 놓여있다. 디저트 이름을 열거하는 ‘Éclair’나 앙증맞은 ‘연애소설’, 깜찍한 목소리를 뽐내는 ’12 Rings’가 이 음반에 있을 이유는 무엇일까? 리듬의 단단한 타격감은 분명 우수하나 저지 클럽, 드럼 앤 베이스의 채용을 그 답으로 내밀기에는 이미 그들에게도 다른 여러 그룹에게도 공공재가 된 상황이다.

키워드의 포용력이 낮은 탓에 원래도 명확하지 않던 유닛 간 음악적 구분마저 더욱 흐려진다. 겹겹이 쌓은 보컬을 타고 질주하는 ‘Choom’은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인 것은 맞지만 ‘힘들 때 우린 춤을 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빼면 < Assemble24 >나 러블루션의 음반에 들어간다 한들 위화감이 없을 법하다. SF/판타지 소설에 나올 어휘로 점철된 ‘Bionic power’의 가사는 차라리 에볼루션이 더 어울려 보인다. 감각적인 펑크(funk) 퍼커션의 ‘Vision’만이 스트릿 댄스 이미지에 부합하며 당당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모든 가능성의 아이돌’이니 변화는 당연하다. 오히려 바뀌어야 할 것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 Performante >는 뼈아픈 진실을 날린다. 최대 어필 요소였던 친숙한 정서를 무턱대고 공용어로 쓸 수는 없고, 주제어가 약간이라도 협소해지는 순간 유닛의 구상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그동안 정체성을 이루던 것들이 난제로 돌아섰으나 애초에 시련의 인정과 극복이 콘셉트 아닌가. 성장통도 제때 찾아온다면 행운이다.

-수록곡-
1. Visual virtue
2. Hit the floor
3. Choom [추천]
4. Éclair
5. 연애소설 (Love soseol)
6. Atmosphere (VV ver.) [추천]
7. 12 rings
8. Vision [추천]
9. Bionic power
10. Visionary vision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