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동안 음악에 투신한 아티스트의 고집이 독특한 형태감으로 발현됐다. 십 년 만에 발매한 솔루션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은 커버 아트의 기괴한 비주얼만큼이나 왜곡과 굴절에 천착한 변주의 집합체다. 틀을 벗어나려는 약속된 의도, 탈규격과 비정형. 마주한 풍경에 감탄하다가도 내키면 언제든 열차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기개가 날이 선 기계음, 정교한 연주와 합심해 밀도를 가득 채운다. 계획적 비틀기로 연출된 자신도 모르는 새 쌓인 노련함이 통쾌한 분출감을 선사하며 연신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첫머리에 배치한 ‘N/A’는 뚜렷한 방향성을 일찌감치 밝히는 일종의 선언이다. 권오경의 베이스가 주조한 볼륨감 넘치는 구조와 박솔의 보컬은 분명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잡음과 소음 사이 왜곡을 뒤따르는 사운드와 언뜻 비명처럼 들리기도 하는 여러 요소가 더해지자 차가운 기계 도시의 울타리가 그려지고 저주를 거는듯한 유희의 구간을 건너 맞이한 말미에선 애써 구축해온 세계를 부수는 광경을 목격한다. 슈게이징의 무책임과는 다른, 철저히 프로그래밍된 일 분여간의 후주 또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뜻하는 곡과 앨범명의 의중을 여감 없이 공표한다.
앞선 트랙의 질주를 끌어안은 ‘Superstition’의 안락함, 보컬과 연주의 잔상을 달리해 경중(輕重) 공존의 매력을 뽐낸 아레나 록 ‘Athena’ 등 쉼 없이 달려온 초입의 뜀박질은 곡의 큰 스케일과 꽉 찬 사운드스케이프로 예상 밖의 지점에서 청자를 향한 음악적 배신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만에 돌아온 그들의 세 번째 작품의 진정한 시작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됨을 선포하는 것일까. 솔루션스의 정체성이 본래 전자음과 로큰롤의 간단하고도 섬세한 결합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三’의 배치는 고무적이다.
우선 ‘Damn u’와 ‘Star synth’의 차분한 호소가 근작 < Time >의 모던한 분위기를 이으며 앨범 전체의 표준 편차를 맞춘다. 이후 오션 컬러 신(Ocean Colour Scene)이나 클락슨스(Klaxons)가 떠오르는 2000년대 초중반의 브리티시 팝 록, 불균형으로 점철된 앞선 주제를 잇는 ‘잎샘’, 제삼세계 리듬을 앞세워 넓게 펼친 그들만의 우주를 갈무리하는 ‘Venus’까지. 전·후반부을 대표하는 하나의 방향을 정하곤 그 위 눈치보지 않고 수축과 이완을 되풀이하는 연주와 전개, 가창, 각종 장치와 테크닉은 그야말로 수려하다.
두 번째 정규작과 신보 사이 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솔루션스는 사실 한 해도 멈춘 적이 없었다. 밴드 내부와 주위 환경의 변화가 가져온 변동 폭은 때때로 결과물의 기복을 낳았으나 그럴 때마다 오히려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의 용기가 < N/A >라는 공든 첨탑 앞에서 빛을 발한다. 이전의 색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이겨낸 그간의 스펙트럼 확장 공사가 안정권에 접어든 광기 혹은 집착과 만나 더 선명한 빛깔을 마련한 셈. 물론 솔루션스가 제시한 해답은 단절과 분리를 논하기에 얼핏 차가운 인상으로 남을 공산이 크지만,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숨겨둔 연결과 융화의 따스한 미학이 그 이상으로 달갑다. 엄정히 계산된 마력으로 국내 록 신의 빈칸을 채운 < N/A >, 작년 한 해를 떠올릴 한 가지 이유로 남기에 충분하다.
-수록곡-
1. N/A [추천]
2. Dncm
3. Superstition [추천]
4. Annihilation
5. Athena [추천]
6. 三
7. Damn u
8. Star synth
9. 잎샘 [추천]
10. Fireworxx [추천]
11. iPTF14hls
12. Venus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