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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lip
식케이(Sik-K)
릴 모쉬핏
2025

by 박승민

2025.01.23

록, 인디 그리고 힙합을 아우르는 광의의 K팝에서 ‘K’란 접두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화두를 던진 주인공이 커리어 초반부터 그리 달갑지 않은 카피캣 꼬리표를 달고 있었던 식케이기에 더욱 흥미로운 물음이다. 파트너 역할을 맡은 이는 릴 모쉬핏이라는 별도 브랜드를 통해 최신식 사운드를 흡수 및 재창조해 왔던 그루비룸의 휘민. 국내 힙합 트렌드 최전선에 위치한 두 아티스트가 만난 만큼 기본적인 말쑥함이 기대되었고 예상을 상회하는 작품이 탄생했다.


총 16분의 짧은 분량 위에 다양한 샘플을 풍성히 차렸다. 최근 ‘Fasho’와 ‘Yes or no’에서 티아라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샘플링해 K팝 리바이벌을 선보였던 휘민이지만 < K-Flip >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바로 2010년대 이후 장르 음악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소스를 그대로 돌려쓰는 쉽고 안이한 방식 대신 장르적 특성에 맞게 자연스러운 윤색을 거쳐 출처를 아는 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솜씨가 탁월하다.


마니아들이 부르짖었던 대로 한국 힙합의 정신을 계승하고 전설을 기억하는 행위가 신세대의 당위에 가까운 것이라면, 그 대상이 꼭 긴 세월을 뛰어넘은 1세대일 필요는 없다. 크레딧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박재범, 도끼, 더콰이엇, 오케이션이라는 지난 10년을 지배한 래퍼들의 이름이 이를 증명한다. 개중 가사의 ‘윗도리는 라프 시몬스’가 ‘윗도리는 마르지엘라’로, 또 각각 트랩과 레이지라는 스타일 면에서도 10년 전과 현재의 유행을 이은 ‘Lalala (Snitch club)’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트랙 자체의 퀄리티와 과거에 보내는 경의 양쪽을 충족한 모범적인 결과물이다.


처음과 끝은 시대를 풍미한 록 밴드들의 힘을 빌렸다. 실리카겔 ‘Desert eagle’, 칵스 ‘Zeitgeist’ 속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가져온 ‘K-Flip’과 ‘Public enemy’는 형식을 180도 비틀면서도 본래의 파괴력을 오롯이 간직한다. 특히 원곡의 리프에서 새로운 루프를 파생해 훅과 벌스를 다르게 짠 ‘Public enemy’의 변화무쌍한 전개가 압권이다. 자신의 위치를 재치 있게 과시하는 식케이, 플로우를 타이트하게 채운 노윤하, 바뀐 활동명과 어울리는 멈블 랩을 구사한 우슬라임까지 비트뿐만 아니라 세 래퍼의 퍼포먼스 역시 제각기 다채롭게 뛰어나다.


한편 보다 비전형적인 샘플 운용 또한 존재한다. 김사월 ‘달아’의 보컬을 재조합해 인터루드와 브릿지 구간을 구성한 ‘Self hate’는 원래의 목소리를 한껏 왜곡하여 메인 인스트루멘탈의 틈새를 보완했다. 릴 모쉬핏의 손길은 음악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비트가 드롭되는 순간 SNS 밈 계정의 괴성을 삽입해 단숨에 기선을 제압한 ‘KC2’가 대표적인 예시다.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배치한 레이지로 곡을 이끌어나가던 중 제이민의 벌스와 함께 시작되는 차진 질감의 드럼 변주가 역동성을 높인다.


근래 리스너들은 ‘얼마나’보다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어 트렌디한 음악을 바라본다. 작년 발매된 두 장의 KC 레이블 컴필레이션에서 레이지의 여러 분파를 깊이 파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나 < K-Flip >은 동시대성을 기초로 장르를 폭넓게 포괄함으로써 그러한 비판을 다소간 불식하는 데 성공했다. 온전한 로컬라이징이라는 허울뿐인 목표 대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찾고 이를 완벽히 구현해 냈다는 점에서, 데뷔 이래 계속해서 발전하는 이들의 기민한 감각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수록곡- 

1. K-Flip 

2. KC2 (Feat. JMIN, HAON) [추천]

3. Lalala (Snitch club) [추천]

4. Interlude

5. Self hate (Feat. 호미들)

6. Public enemy (Feat. 노윤하, Wuuslime) [추천]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