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이 비정기적으로 미처 리뷰하지 못했던 작품을 되짚어봅니다. 이번 리뷰는 이즘에서 '2013 올해의 가요 앨범'으로 선정한 진보의 < Fantasy >입니다.
알앤비를 중점으로 다년간 활동했던 음악가의 일렉트로닉을 향한 영역 확장은 성공적이었다. 이후 샤이니, 레드벨벳, 방탄소년단 등 유수의 작업에 참여하는 K팝 프로듀서로 범위를 넓혔기에 변혁에 붙을 사후평가는 더 합격점을 받을 수밖에. 본디 국내 팝이 흑인음악을 기반에 두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발전해 온 음악이라는 점에서 진보만큼 프로듀싱에 적격인 사람도 드물다. 다각도로 수용하고 스스로의 이야기로 뛰어든 리허설은 그 자체로 훌륭한 퍼포먼스였다.
도회적인 사운드로의 변신은 개인적 층위보다 2010년대 음악계 전반에 일어났다. 동일 장르 대표 뮤지션 니요를 예로 들자면, 2005년의 ‘So sick’과 2007년 ‘Because of you’ 그리고 2010년 ‘Beautiful monster’ 사이 변화는 진폭이 상당하지 않은가. 2000년대부터 2010년대를 차근히 밟아간 모든 뮤지션이 으레 거치는 변화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진보는 관례보다 방향키를 더 비틀어 재치 있는 실험을 감행했다. ‘Cops come knock’에서 소울 계열 아티스트의 면모를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전자음을 착실히 각인시키는 모습은 그의 도전에 분명한 이유가 있었음을 실감케 만든다.
이 앨범이 발매되기 이전, 프라이머리가 풍향계를 매만지고 이후 그레이, 자이언티 등이 차트에 큰바람을 일으키며 세련됨에 대한 정의를 가공했다. 이 시기의 국내 음악을 곱씹을 때 떠오르는 신시사이저 리듬은 당대의 도로에 울려퍼진 대표적 이미지다.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들과 교류와 영향력을 주고받은 진보는 그 흐름의 최전선에서 알앤비를 보존했다. 인트로 ‘Neon pink ocean’의 연주는 보컬 없이도 소울을 느끼게 하고, ‘Fantasy’는 지금 와서 들어도 퇴색되지 않는 빛을 유지하니 말이다.
단순히 보컬로만 진보의 재능을 높이 산 이들에게 < Fantasy >는 놀랄 포인트가 많다. 열한 곡에 걸쳐 듣다 보면 목소리보다 기억에 남는 점은 건반을 기초에 둔 멀티 인스트루멘탈이기 때문. ‘Delete it deal it’, ‘Don’t be sad when you’re sad’은 돋보이는 말장난만큼 재치가 넘치고 ‘Loverbot’의 비트는 현재 하이퍼 팝에 쓰여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해당 리듬이 2020년대에 유행을 선도했다는 점을 되새겨 볼 때 놀라움은 배가 된다.
스윙스가 피처링한 ‘It’s over’와 마지막 곡 ‘Be my friend’는 그간의 이 아티스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향취를 풍기며 기존 팬을 위한 친절을 잊지 않는다. 여러 해 거듭한 활동을 담은 만큼 깔끔한 마무리도 당연히 챙겼다. 순간의 반짝임을 노렸다기보다 반복해 들을수록 얼마나 세심하게 제련했는지 느껴지는 보석이 여기에 있다. 11년이 지나 만든 < Summer Freak: Sun, Rain, Love >까지도 그 빛이 이어지듯이, 진보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불투명한 확장성에 큰 구멍을 뚫어 터널을 만든 작품이다.
-수록곡-
1. Neon pink ocean
2. Fantasy [추천]
3. Cops come knock [추천]
4. Tape it slow baby (Feat. Ill Jeanz)
5. Loverbot [추천]
6. Traumatic (Feat. Jet 2)
7. Delete it deal it
8. Reboot my universe
9. Don’t be sad when you’re sad
10. It’s over [추천]
11. Be my friend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