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몰아 보기, 예(Ye) 내한 공연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by 정기엽

2025.08.07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기행의 역(逆)은 정상 운행이다. 평소 해괴한 행실을 일삼는 카니예지만 이날만큼은 여느 팝스타와 다를 게 없었다. 인천으로 운집한 수만 명의 함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화답하고, 신과 구를 적절히 섞은 세트리스트로 작년 리스닝 파티로 인해 불어난 기대감에 부응했다. 문제시되는 발언으로 폭주한 끝에 취소되었던 전적이 있는 단독 공연과 동일한 게 맞나 싶을 만큼 깔끔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논란보다 놀람이 큰 현장이었다.




첫 번째 서프라이즈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황당해 보이는 말이지만 진심이다. 작년 고양시에서는 70분, 직전의 상하이 공연에서도 40분가량 딜레이가 있던 터라 카니예의 팬들은 자연스레 지각을 예상했다. 하지만 8시 정각, 스크린이 암전되고 바로 무대 중앙부로 올라와 ‘Power’를 불렀다. 여유롭던 팬들이 소리를 듣고 공연 시작 후에야 부랴부랴 착석을 시작한 탓에 오프닝 줄곧 어수선함이 컸지만, 그를 신뢰했던 수많은 신도는 아랑곳 않고 떼창했다.


당황과 광란이 객석에 섞여 있던 와중에도 쇼는 계속된다. 두 번째 곡이던 3집 수록곡 ‘Can’t tell me nothing’의 끝에는 가사를 따라 부르는 팬들에 힘껏 반응하다가 “Mama, look at me now”라고 연거푸 외쳤다. 앨범 제목을 어머니 이름을 따 < Donda >라고 지을 만큼 애정을 가지는 이를 사모한 이후, ‘Ni**as in paris’, ‘Priase God’ 등 10여 년을 아우르는 디스코그래피를 넘나들었다. 시작 당시 너무 울려 퍼지던 소리도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개선되어 귀를 채웠다.


카니예는 현장에서 거의 숙련된 디제이였다. ‘Heartless’, ‘Love lockdown’에서 같이 따라 부를 구간을 알려주면서 분위기를 조율한 끝에 ‘Bound 2’에 다다르는 전개는 오직 사운드만으로도 인상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Monster’ 등 몇몇 곡은 콘솔을 향해 넘겨 달라 요구하며 페이스 조절을 스스로 하며 39곡의 대장정을 달렸다. 말끔했던 후드가 땀에 다 절여질 정도로 덥던 열대야 속 그의 심장은 더 뜨거웠다.




두 번째 서프라이즈는 딸인 노스 웨스트의 등장. ‘Jail’을 시작으로 최근 작품이 흐른 섹션에서 < Vultures > 시리즈에 피처링으로도 참여한 아이가 등장해 해당 곡들을 직접 라이브로 불렀다. 그의 친구까지 셋이서 달 같은 표면 위를 뛰어다니며 내딛는 밝은 발걸음은 순수하게까지 다가왔다. 물론 그 단락의 마지막을 장식한 ‘Carnival’의 가사는 그 광경과 퍽 어울리진 않았지만. 후반부의 ‘FourFiveSeconds’와 ‘Run this town’, ‘Famous’ 등이 채운 구간은 리아나가 등장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마치 뮤즈를 위한 헌사 같았다.


세 번째 서프라이즈는 화려한 무대 효과 및 연출. 카니예와 객석이 하나가 된 타이밍에 맞춰 터지기 시작한 폭죽은 성공적인 교감에 대한 축포같이 느껴졌으며, 많은 댄서를 대동한 ‘On sight’과 ‘No church in the wild’는 다인원의 퍼포먼스가 주는 쾌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막바지에 이르러 360도를 둘러싼 모두가 하나 되어 휴대전화 라이트를 켠 ‘Flashing lights’는 더 큰 빛과 소리의 잔향을 휘날렸는데, 카니예는 이에 감동하여 ‘Flashing lights’를 다시 틀며 객석을 한참 바라보곤 화려한 조명의 ‘All of the lights’로 넘어갔다.




마지막 곡을 부를 때가 되자 카니예는 “너희가 어떤 노랠 기다리는지 알아, 하지만 ‘Stronger’부터 가자”며 끝까지 상호 간 호흡을 놓지 않고 ‘Stronger’를 불렀다. 또한 지난해 3만 명의 환호성을 자아냈지만 2분간의 재생에 그쳤던 ‘Runaway’를 12분에 달하는 대대적 편곡으로 완창하며 피날레를 하이라이트로 장식했다. 하얀 비둘기들을 무대 위에 풀며 카니예가 떠난 자리에 음악과 공존하는 평화의 상징들이 한동안 자리를 지켰고, 관객들은 그 여운을 즐겼다. 당신이 도망치게 두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겠단 결의로 해석되던 순간이었다.


“한국 사랑한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온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아 줘.” 이것이 카니예가 무대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나치를 옹호하고, 폭언을 일삼던 이와 동일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두 시간 여의 공연엔 애정과 열정이 가득했다. 필자 또한 그의 지속된 분열에 지쳐 실망을 표한 이들 중 하나였지만, 그가 만들어 온 사운드들을 들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Through the wire’ 같은 20년이 훌쩍 지난 곡도 아직도 세련미가 있으니, 음악, 그중에서도 선율로는 나무랄 수 없는 인물이리라.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