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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rang
방탄소년단(BTS)
2026

by 한성현

2026.03.23

새삼스럽지만 방탄소년단은 더 이상 일곱 멤버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의 인정을 갈구했던 중장년층의 오랜 갈증을 해소하는 대리인이자 소속사 하이브에게는 주가 등락 결정 요인이고, 콩고물을 조금이라도 주워 먹기 바쁜 정계가 노리는 업적이다. 감당 가능한 규모 이상으로 커진 아우라와 중압감은 으레 두 갈래를 예고하는 법이다. 다수의 기대에 정체성을 의탁하거나, 또는 극도로 소탈함을 노래하거나.

제목 ‘아리랑’이 공개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결정은 전자에 기운 듯했다. EDM에 국악 추임새를 삽입한 ‘Idol’처럼 소위 ‘국뽕’ 심리를 이용하려는 심보 아니냐는 추측 혹은 우려가 불어나려던 찰나, 뒤이어 디플로와 라이언 테더, 마이크 윌 메이드 잇, 테임 임팔라, 아르테마스 등 해외 제작진이 크레딧에 빼곡한 트랙리스트가 공개되자 < Arirang >의 모토는 곧바로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대체 BTS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설계도 자체는 간단하다. 성덕대왕신종 타종 소리로 만든 인터루드 ‘No. 29’를 경계로 앨범은 크게 둘로 나뉜다. 팝 문법에 익숙하다면 ‘Swim’을 필두로 한 뒤쪽을 선호하겠지만 매무새는 전반부 힙합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끝내 민요 ‘아리랑’이 한 구절 등장하는 결말을 인내할 수만 있다면 뱃머리에 놓인 ‘Body to body’의 위압감은 상당하며, 플룸과 제이펙마피아가 참여한 ‘Fya’는 그들의 터치가 얼마나 녹아있는지와는 무관하게 리더 알엠이 두 장의 독집에서 내비친 마니아적 탐색이 잘 이식된 곡이다.

래퍼들의 입김이 세진 반면 팝 트랙은 소극적이다. 프로덕션 뒤에 몸을 숨기는 모습이랄까. ‘Merry go round’는 시작부터 케빈 파커의 향이 그룹을 덮어버리고, 마지막 ‘Into the sun’은 10년 전 프랭크 오션이 촉발한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착실한 재생산에 그칠 뿐이다. 그렇다고 보컬에 강세를 둔다 한들 높은 음역대를 맴도는 탓에 곡과의 밀착력도 약할뿐더러 후배들이 많이 누적한 전형적인 수록곡 양상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맹목적인 목표를 위해 개개인을 살피지 않는 시야, 어쩌면 제일 K팝다운 면모다.

영미권 히트 풍조를 그때그때 바꿔가며 차용한 역대 대표곡 리스트처럼 진한 레퍼런스를 깔끔하게 인정하는 ‘Like animals’가 차라리 속시원한 것도 이러한 이치에서다. 솜버를 주축으로 다시금 떠오르는 남성 아티스트 표 멜랑꼴리 팝의 강한 잔향과 별개로 아르테마스의 손길이 들어간 어두운 분위기는 후반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후렴을 제시한다. 더군다나 과거 3~4년 정도까지 길어지던 트렌드 수입 시차를 대폭 축소했으니 다국적 A&R의 분투가 선명하다.

아이돌보다 힙합을 부각했던 커리어 초반으로의 복귀인가도 싶지만 정작 지지층 결집의 근간이었던 스토리텔링이 사라졌다. ‘One more night’, ‘Please’가 그나마 팬덤을 향한 러브레터 계보를 이으려 하나 ‘소우주’나 ‘Magic shop’이 전했던 감동과는 온도차가 극심하다. 우정과 끈끈한 유대감의 자리는 스타덤으로부터의 도피 심리가 차지했다. 희망 찬가를 부르기에는 어깨에 실린 짐이 무거워진 상황이니 이해가 가지만, 대부분의 정서가 솔로 음악에서 시사한 자아의 연장에 가깝다는 점은 제작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의 고려가 소홀했던 건 아닌지 묻게 한다.

한마디로 팀워크가 희미하다. ‘Aliens’가 꼭 그렇다. 사자성어 말장난을 하며 김구 선생을 언급하는 알엠과 여전히 화가 난 슈가, 떠밀리듯 ‘중모리’ 류의 단어를 끼워 넣은 제이홉만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참 꾸준하다. 그렇지만 피상적인 가사를 읊는 보컬 멤버들은 각자의 파트를 부르기에 급급한 나머지 일곱이 모인 팀으로서의 메시지 전달은 놓쳐버렸다. 그 결과 오직 방탄소년단이기에 논할 수 있는, K팝에 가해지는 서구의 삐딱한 시선에 대한 반박도 싱거운 기싸움으로 전락해 버린다.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이 맥거핀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동일하다. 낮은 한국어 가사 비중도, 가요식 선율 부재도 부차적 문제다. 근본적으로 이제 방탄소년단의 음악에는 시대정신이 없다. 누구나 사적인 삶을 그리워하는 때가 오지만 일인칭의 아픔도 ‘화양연화’ 같은 서사와 표어를 통해 모두의 공감대로 넓혔던 이들 아닌가. 쳇바퀴에 갇힌 처지를 토로하는 ‘Merry go round’나 유명세의 그림자에서 고통받는 ‘Normal’이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어도 역동성이 제거된 음악은 그전처럼 대중이 고민을 투사하는 대상 대신 저 멀리서 고고히 눈물 흘리는 아이콘으로만 위치를 제한한다.

역설적으로 영어로 테두리를 치고 명확한 선율마저 거부한 ‘Swim’에서 스타 ‘BTS’는 일곱 ‘방탄소년단’이 된다. 막연히 뛰어들고 싶다는 고백을 반복하며 깊은 수심으로 가라앉고자 하는 체념적 욕구의 핵에는 원인과 잘잘못을 떠나 존재를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해진 파장 앞에서의 무력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 Arirang >은 꽤 슬픈 앨범이다. 강강술래처럼 서로를 붙잡고 버티려 해도 이미 각자가 너무나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K팝 역사에 영구적으로 기록될 방탄소년단이라는 브랜드, 우리는 그 이름이 누구도 알 수 없는 개념이 되어 아득히 멀어지고 있음을 숨죽여 지켜보는 중이다.

-수록곡-
1. Body to body [추천]
2. Hooligan
3. Aliens
4. Fya [추천]
5. 2.0
6. No. 29
7. Swim [추천]
8. Merry go round
9. Normal
10. Like animals [추천]
11. They don’t know about us
12. One more night
13. Please
14. Into the sun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