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은 결국 사소한 디테일에서 나온다. 과포화된 아이돌 신에 도전장을 내민 키키의 생존법은 신비로운 상상의 조밀한 구현이었다. 날 선 질감을 입힌 < Uncut Gem >이 어떤 영역으로든 도달하겠다는 모험심을 제시했다면, 인터넷 오류로부터 탄생한 ‘404 (New era)’는 이 당돌한 발상에 구체적인 이미지와 개성을 부여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뒤덮인 약간은 어수선한 지도였지만 목적지를 향한 좌표만큼은 선명히 새겨져 있던 것. 단잠에서 깬 이들의 이번 행선지 < WhyKiiiKiii >는 그간의 여정 끝에 펼쳐진 축제의 현장이다. 그룹의 뚝심과 야심 찬 프로덕션이 맞물린 음악은 야자수와 햇살이 어우러진 타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인다.
분야별 독특한 아티스트를 초청한 페스티벌은 그 자체로도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앞선 협업을 통해 서로의 호흡을 확인한 이슬아 작가와 래퍼 릴 체리, 오메가 사피엔이 톡 쏘는 말맛을 살렸다면 이 신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토마토맛과 더 딥은 어린 소녀들에게 과거를 탐미하는 새로운 감각을 건넸다. 그만큼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론 주변을 채운 조연에게 시선이 쏠릴 수도 있었을 터. 여기에는 세심한 연계와 확장이 주효했다. 플럭 사운드를 따라 자유롭게 헤엄치는 ‘Ever2late!’는 ‘Delulu’의 도시를 떠돌던 모습과 닮아 있고, 장난기 어린 래핑이 스며든 ‘Hey hi’는 다소 튀었던 ‘멍냥’의 엉뚱함을 구체화한다. 기존의 공식을 강화하는 치밀한 설계다.
한 곡 한 곡의 채도가 높다. ‘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나 어떡해)’ 또한 쌓아온 복선을 회수하면서도 그룹의 발랄한 캐릭터성에 방점을 찍는다. 제목부터 2010년대 초반을 겨냥하며 판을 짰고, 작사와 구성 방식에는 신세대 감성을 대표하는 에피의 도움을 받아 ‘Groundwork’와 ‘BTG’에서의 작풍을 날카롭게 제련했다. 이 격한 사운드에 키키의 음색이 가려지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중저음의 랩과 보컬이 말끔히 정돈된 K팝의 형식 대신 언더그라운드의 하이퍼팝을 품으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어느덧 대중화된 장르일지라도, 과감한 손질을 거친 트랙은 아이돌 음악에서 좀체 허락되지 않았던 직선적인 쾌감을 해금한다.
그 결과 < WhyKiiiKiii >에는 과거와 현재의 취향이 포개진다. 타이틀 곡 ‘Pop off pop off’가 그러하다. 오토튠을 가득 머금은 보컬과 쨍한 톤의 신시사이저, 후렴에서의 거센 변주는 프루티거 에어로라 불리는 신선한 콘셉트를 찾던 관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니 누군가는 엄정화의 ‘D.I.S.C.O’나 케샤의 ‘Tik tok’을 떠올리는 것도, 혹자는 색다른 음악으로 인식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비슷한 시기의 알앤비로 향수를 건드리다가도 익살스러운 웃음소리가 고정된 심상을 뒤엎는 ‘Sweet sour’처럼, 앨범은 각기 다른 관점으로 특색 짙은 여러 스테이지를 즐기도록 이끈다. 친숙함 속에서 낯섦을 피워내야 하는 K팝의 미덕이 제대로 작동했다.
이제 막 두 해째를 맞은 그룹의 결과물이 대담하다. 인디 신의 문법을 받아들이거나 복고적 미학에 알맞은 장르를 공수하는 등 최근 흐름을 감안하면 이들의 기획도 표면적으로는 특별하다고 보기 힘들지만,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음악은 끝내 모든 요소를 한데 모아 팀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집약체로 기능한다. 무엇을 택했느냐보다 어떻게 다뤘느냐의 차이다. 흩뿌려둔 가능성을 주워 담아 뾰족한 사운드로 벼린 접근이 돋보이고, 최신 경향을 자신들의 언어로 윤색한 전략은 추억 속 플립폰에 고유한 벨소리를 새긴다. 실험적이면서 때로는 무모했던 청사진에 철저한 실행력이 보태지는 순간, 키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수록곡-
1. Ever2late!
2. Hey hi [추천]
3. Pop off pop off [추천]
4. Sweet sour [추천]
5. 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나 어떡해) [추천]
6. Blue hou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