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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데뷔/결성: 2003년

활동시기: 2000년대

솔로활동

아티스트 소개

by 이대화

만 스물다섯의 젊은 트로트 가수로, ‘어머나’의 전국적인 열풍을 몰고 온 여인. 2005년 2월 MBC 음악 캠프에서 1위를 거머쥐면서 김수희의 ‘애모’ 이후로 12만에 트로트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어머나’의 인기는 2004년 후반부터 불이 붙기 시작해 이듬해 초에는 쇼 프로그램의 러브 콜 1순위로, 모든 매체와 방송을 장악했다. 장윤정은 “어제 했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바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

이런 열풍을 가능케 한 주역들은 바로 네티즌. ‘어머나’는 새로운 매체로 부상한 ‘MP3’의 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5만장도 채 되지 않는 음반 판매량으로 전국적인 히트를 야기 시켰다. 순수함을 환기시키는 동요 같은 분위기가 어필했으며, 마음씨와 옷맵시를 동시에 갖춘 외모도 폭 넓은 팬 층을 확보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남부럽지 않은 스타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년간의 무명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다. 장윤정은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안에 넌’ 이란 곡으로 대상을 받았던 경력의 소유자. 당시 나이가 겨우 21살이었던 장래가 촉망 되는 신인이었다. 하지만 음반 취입의 기회는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방황을 끝내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트로트 음반의 취입을 결정한다. 장윤정은 그 때의 심정을 “노래를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밤무대에서 관객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하는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장윤정은 연기의 길로 접어든다. MBC의 주말 간판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주연 급으로 꾸준히 출연하는 기회를 얻은 것. 주로 현대판 전설의 고향 같은 연기를 맡았던 장윤정은 이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차츰 얼굴이 알려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초 그녀를 연기자로 알았다. 가수로 나오자, 얼굴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저 여자가(당시엔 이름도 잘 몰랐다) 원래 가수였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3년 10월에 데뷔하여 정규 앨범을 낼 때까지 꼬박 1년의 시간이 걸렸다. 러시안 폴카의 전형적인 뽕짝이었던 ‘어머나’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재밌는 노래’로 화제가 되었고, 성인 가요프로그램에서도 좋은 호응을 얻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나’는 각종 핸드폰 벨소리와 컬러링, 홈페이지 배경음악을 장악했다. 핸드폰 벨소리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2004년 5월에는 야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1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에도 각종 검색사이트에서 그녀의 이름은 항상 10위권 내에 있다. 가수가 아닌 ‘호기심’의 대상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대중들의 반응이 서서히 뜨거워지자 2004년 10월에 첫 정규앨범 <어머나!>가 발표된다. 한국음악산업협회의 통계에 의하면 10월 판매량이 4131장으로 동방신기 다음으로 랭크되어 있다. 시골 처녀가 상경하는 스토리의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이러한 인기는 시상식에도 반영되어 2004년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본인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한 태도를 취했고, 이것이 또한 대중들의 귀에 솔깃하게 감겨들었다. 최신 휴대폰 광고에 ‘어머나’가 삽입되는가 하면, 2005년 설날에는 장윤정의 마음씨 고운 이미지를 노려 명절 쇼 프로그램의 최우선 섭외 대상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이 상황을 가리켜 “어머나~”라고 표현한다.

2집을 구상 중에 있다는 장윤정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걱정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히트와 같은 케이스가 전례 없다는 것. 신곡의 방향과 컨셉을 결정해 줄 노련한 기획자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젊은 신신애로 남을 것인지, 가요계의 유례없는 선례를 남기며 트로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인지, 모든 것이 장윤정의 차기 활동에 달려있다. “전 누가 뭐래도 트로트 가수의 자부심을 잃지 않을 겁니다. 팬들도 젊은 가수가 부르는 색다른 트로트 노래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길 바랍니다.” 그녀의 2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