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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Jacqueline
정재형
2008

by 조아름

2008.06.01

내가 서 있다. 저 멀리 보일 듯 말듯 한 거리에 그 사람이 서 있다. 정재형의 그림이다. 지금껏 그는 이별을 노래하고 아픔을 찬양했다. 간혹 단비처럼 담아주는 장조의 곡들은 달콤하기 그지없지만 마음 편하게 듣기엔 뭔지 모를 불안감이 있었다. 입 꼬리는 올라가 있는데 나머지 얼굴 근육은 전혀 변화가 없는 부자연스런 웃음. 그것이 그의 희망가였다. 안개가 잔뜩 흐린 물기 머금은 하늘이 그가 지녀온 뮤즈의 청사진이었다면 3집 < For Jacqueline > 에서는 그 하늘아래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시야에 잡힌 장면으로 크로스 오버된 셈이다.

1995년 베이시스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1999년 솔로로의 전향, 숱한 영화음악 작업에 이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은 한결같이 전지적 작곡자 시점을 유지해왔다. 너무도 진지한 탓에 숙면용 음악으로도 쓸 수 없다고 항간에는 일컬어졌지만 하이 발라드를 원하는 사람들은 정재형을 천재라 불렀다. 2002년에 2집을 낸 후로 영화를 제외한 곳에서 그의 음악을 접하기는 힘들었고 이대로 영화음악가로 돌아서는 것은 아닌지 그가 내뿜는 학구열에 오히려 걱정만 쌓이던 나날들이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지붕위의 고양이'는 보사노바의 멜로디에 일렉트로닉 리듬이 살짝 얹어진 모델 장윤주와의 듀엣곡이다. 꾸밈없는 장윤주의 목소리가 이번만큼은 울지 않은 정재형의 목소리와 생각 외로 잘 어울린 탓에, 수를 둔 것은 아니겠지만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꽤나 인기를 얻겠다 싶은 곡이다. 이 곡을 가뿐히 지나가면 타이틀 'Running'이 흐르는데, 또 어떤 멜로디로 청자를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인가. 예상과는 달리 착착 감기는 리듬이 들려왔다. 최근 토이 6집에서도 선보인 것처럼 작곡가에게 있어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탐나는 재료임에 틀림없다.

프랑스에서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낸 정재형의 입장에서 유럽을 사로잡은 장르에 대한 도전은 당연한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 욕심은 2집 < 두 번째 울림 > 의 '비록' 에서 쓰인 리듬 프로그래밍에서도 일찌감치 맛볼 수 있다. 롤러코스터의 베이시스트 이상순,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아오키 타카마사(AOKI takamasa) 와의 공동작업 등 새로운 시도로 리듬은 가벼워졌지만 보컬과의 거리감이 못내 아쉽다. 정재형은 여전히 심연 속의 애절한 기억에 젖어 있는 듯 보인다. 몇 개 안되는 트랙이지만 그 갭을 객원싱어로 채운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3집을 듣기에 앞서 걸었던 기대는 '프랑스 혹은 유럽의 정서를 얼마만큼 이 앨범에 녹여냈을까' 였다. 클래식 전공자인 그가 원산지인 유럽에서 다시 클래식과 영화음악을 공부하며 새로이 얻게 된 요소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고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가 느낀 점은 티끌만한 차이라 할지라도 나비효과만큼 충격적으로 와 닿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전시라도 하듯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단순한 유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양하지만 일관성이 있는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는 < For Jacqueline > 은 대중음악적 위치상으로나 음악적 역량으로나 앞으로 작곡가 정재형이 다져갈 길을 묵묵히 비춰줄 음반이다. '인어를 품에 안다' 와 '쟈클린' 에서, 전작인 'Souvenir D'amour' 를 잇는 'Lougue Distance' 의 체취 가득한 샹송에서 그는 여전히 슬프다. 슬퍼서 아름답다고 누군가 읊조린다면 누군가는 또 대꾸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다고.

-수록곡-
1. 지붕 위의 고양이 (Feat. 장윤주) (작사: 정재형 / 작곡: 정재형 / 편곡: 정재형)
2. Running (정재형)
3. 인어를 품에 안다 (정재형)
4. 사랑은 이제 싫다 (정재형)
5. 일요일 오후 (Feat. 정인) (정재형)
6. 날개 (정재형)
7. 쟈클린 (정재형)
8. 사랑은 끝을 지나 처음으로 (정재형)
9. 1988 (박창학 / 정재형 / 정재형)
10. Longue Distance (Claude Habib / 정재형 / 정재형)

Producer: 정재형
Co-Producer: AOKI takamasa, Juno, Kayip
조아름(curtzz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