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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ing Gravity
(Nell)
2013

by 이기선

2013.06.01

3부작이라고 해서 독특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넬이 이질적인 자기 변신을 거듭하던 밴드가 아니었던 만큼 굳이 트릴로지라는 이름으로 유기성을 강조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옴니버스 형식의 기획이란 말에는 아무래도 눈이 가게 마련인데 그 때문인지 내러티브를 일관적으로 짜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앨범을 관통하는 맥이 보인다. 시리즈의 첫 번째였던 < Holding Onto Gravity >에서는 중력이라는 소재만 어렴풋이 제시하는 수준에서 그쳤다면 이번에는 보도 자료에서부터 모든 곡들의 화자와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여섯 곡의 '나'는 앨범 이름처럼 탈출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지향한다.

가사는 독백이라기 보단 대화에 가깝다.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너'라는 구체적 지칭대상을 가지며 곡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원래부터 넬의 노래는 자의식이 강한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소설을 읽는 듯 구체적인 성격과 행동까지 짐작 가능할 정도이다. 곡 구성도 이런 경향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렇게 모든 곡들을 연결시켜 놓으니 유치해보일지는 몰라도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생기고 무엇보다 작정하고 만든 티가 난다.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내용들은 사실상 이전과 다를 것이 없다. 신스 사운드와 밴드 연주로 경계를 만들어 도입부와 후렴구를 매끈하게 재단한 'Ocean of light'도, 콜드플레이(Coldplay) 혹은 시규어로스(Sigur Ros)처럼 코러스나 악기로 층을 쌓아올린 뒤 폭발시키는 'Burn'과 'Haven'도, 마지막 여운까지 잊지 않는 'Walk out'까지도 인상적이지만 모두 넬의 이력들 속에서 어떻게든 대체 가능한 모습들이다.

넬은 이전보다 조금씩 달라져 왔으나 여전히 분위기가 생명인 밴드다. 이는 주로 멜로디나 가사에 의존하는 면이 있었으나 < Slip Away >에서부터는 이 감정선을 고요하게 퍼트리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감응하는지 알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도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럴수록 넬은 자신들의 상투성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다. 분노와 슬픔을 통해 구축된 넬의 영역은 언제나 안정적인 수준의 성취를 이루어내지만 수없이 변형과 재생산을 반복한 탓에 어떤 시도를 해도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넬의 장점이자 한계다. 지금까지의 토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발산하는 중력은 분명 이들의 어딘가를 붙잡고 있다.

-수록곡-
1. Boy - x
2. Ocean of light [추천]
3. Perfect
4. Burn
5. Haven [추천]
6. Walk out.
이기선(tomatoapp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