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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Beenzino)
2012

by 전민석

2013.09.01

혜성 같이 등장한 것 같지만 이미 힙합 신에선 알아주는 슈퍼 루키였다. 피쳐링, 객원래퍼, 힙합그룹으로 이어진 빈지노의 행보는 오히려 순차적이었다. 별명이 '사기캐'라지만 랩도 처음부터 이 정도는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 받게 된 것은 핫클립(Hotclip)의 믹스 테이프와 재지팩트(Jazzyfact)의 앨범이 나온 2010년부터다.

재지팩트의 데뷔 앨범 < Lifes Like >는 걸출하다. 재지(Jazzy)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비트 위에 굽이치는 플로우 속 일상을 소재로 한 가사. 무엇보다도 어렵지 않았다. 말랑말랑하고 트랜디한 힙합은 유행에 민감한 어린 20대 여성층을 사로잡았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스타일리쉬한 힙합 넘버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영향을 끼친 만큼 그에게 쏠렸던 관심은 2011년, 일리어네어 레코즈에 입단하면서 더 늘어났다. 이후에 재지팩트의 이름으로 두 개의 싱글을 내고 여러 곳에서 피쳐링을 했지만 이때까지도 개인 결과물은 없었다. 2012년 여름이 되어서야 그의 첫 솔로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요소들의 기대를 최대치로 충족시킨다. 건드리는 스펙트럼이 예측 가능하지만 그 안에서의 밀도가 높다. 전과 같이 거창할 것 없는 소소한 주제에 표현력과 재치를 더했다.

첫 곡, 'Nike shoes'부터 강렬하다. 3절까지 평범하게 진행되는 노래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다이나믹 듀오가 참여한 만큼 알찼던 2,3절이 결정적이었지만 애초에 프라머리의 비트가 산책로였다. 랩뿐 아니라 비트까지, 모든 것을 이용해 그 곡의 소재를 표현한다. 이 앨범의 전곡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Aqua man'의 센스는 두드러진다.

어장 비트 안에서 'Aqua man'의 모든 랩은 플로우가 가사를 고스란히 표현해낸다. '스케일'은 정말 어마어마할 것 같고, '어디긴 니 마음이지'라는 본심은 참 능글맞다. 이런 튼튼한 구조 위에 얹힌 부수적인 요소들마저 반짝인다. 흥얼거림을 벗어나 노래에 가까워진 후렴구만큼 빛났던 것은 바로 뒤의 '헤엄 헤엄 헤엄'이다. 가벼운 위트로 곡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후반부에 드럼을 동반한 코러스도 산뜻하다. 이상적인 대중 힙합이다.

빈지노에게는 그만의 랩 스타일이 있다. 플로우뿐 아니라 가사에서도 그의 미감이 느껴진다. 지금까지의 커리어 중 그 아름다움이 정점에 달한 것은 'If I die tomorrow'에서 였다. 이제는 흔해져버린 한국 특유의 감성 힙합이 될 수 있었던 진지함 속에서도 그는 평소 그의 스타일대로 랩을 뱉는다.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그의 속내는 '인생은 오렌지색의 터널'이라는 구절로 정리된다.

이외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Boogie on & on', 슬럼프를 영감으로 승화시킨 'I'll be back'과 익살스러운 더 콰이엇(The Quiett)의 랩으로 유명한 'Profile'까지. 2012년 한국 힙합 신을 빛낸 앨범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모와 학력, 혹은 곶감, 여러 매력을 통해 그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잊혀지지 않을 이유는 음악 하나 만으로도 충분하다.

-수록곡-
1. Nike shoes (Feat. Dynamic Duo)
2. 진절머리 (Feat. Okasian & Dok2)
3. Boogie on & on
4. Aqua man [추천]
5. Summer madness (Feat. The Quiett)
6. I'll be back
7. Profile (Feat. The Quiett & Dok2)
8. If I die tomorrow [추천] 
9. [Bonus Track] Always awake
전민석(lego9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