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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ness
케이티 페리(Katy Perry)
2017

by 정민재

2017.07.01

누구에게나 진지해지는 순간이 있다. 영원한 ‘캘리포니아 걸’ 케이티 페리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그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다), 동료 가수와의 갈등, 달콤했던 연애의 끝. 도무지 좋은 일을 찾기 어려웠던 최근의 그는 이제 파티장을 벗어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사실 심경의 변화는 지난해 물에 잠긴 채 계속해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Rise’에서부터 감지됐다. 물론 올림픽을 위한 노래였으나, 마이너 음계의 장엄한 미드 템포 송가는 형형색색 팝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보 < Witness >는 이러한 변신의 총합이다. 선명한 후렴, 멜로디 맹폭격에 주력했던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온 힘을 쏟았다. 심리적 동요를 반영하듯, 앨범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혼재한다. 사랑을 떠나보낸 후의 원망과 그리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피로감, 그럼에도 뽐내고 싶은 ‘스웨그’, 비정상적으로만 보이는 사회를 향한 냉소 등이 질서 없이 엉켜있다. 독특한 소재 설정과 메타포를 통해 위트를 드러내곤 했던 이전 작업물과는 결이 다르다. 자신을 음식에 빗대고는 마음껏 먹으라 으스대는 ‘Bon appetit’ 정도가 과거 그와 맞닿아 있다.

내 이야기에 몰두한 것은 좋다. 1차원적 압운, 다소 얕은 심도의 가사는 아쉽지만 그것까지도 진솔한 자기 고백이라 할만하다. 문제는 잘 들리지 않는 음악. 감각적인 장식을 걷어내고 정돈된 톤으로 꾸린 노래들에 이렇다 할 포인트가 없다. 선율감이 뛰어나지도, 보컬의 맛이 풍부하지도 않으니 듣는 재미가 덜하다. 그렇다고 출력되는 소리에 역점을 둔 것도 아니다. 이미 흔하게 듣고 있는 일렉트로닉 팝 사운드가 음반의 주 재료다. 메시지의 중량감에 비하면 음악 자체의 감동은 미약한 수준이다.

케이티 페리를 대표했던 ‘캐치 멜로디’는 전멸에 가깝다. ‘Hey hey hey’, ‘Power’, ‘Mind maze’, ‘Bigger than me’ 등 나름대로 구성에 신경 쓴 곡들도 ‘Roar’, ‘Firework’ 등의 매끈함과 동일 선상에 두긴 어렵다. ‘E.T.’, ‘Dark horse’ 등 단조 선율에서도 흡인력을 발휘했던 과거가 무색하다. 발라드 ‘Miss you more’에는 ‘Unconditionally’, ‘Wide awake’의 울림은 사라지고 공허한 감정 호소만 남았다. 의미망에서 첫 곡과 호응하는 마지막 곡 ‘Into me you see’ 정도가 그의 팝 발라드 계보를 잇는다.

그렇다고 매력적인 노래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앨범 첫 머리에서 듣는 이를 향해 내 편에 서주겠냐며 지지를 구하는 ‘Witness’, 유리스믹스(Eurythmics) 풍 복고적 신스 사운드를 활용한 ‘Roulette’, 가스펠 콰이어와 함께 인생은 되돌아오는 저울추 같은 것이라고 노래하는 ‘Pendulum’이 신선함을 부여한다. 트렌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훅으로 무장한 곡도 있다. 니키 미나즈의 지원 사격을 받은 ‘Swish swish’, 재치 있는 비유와 과감한 섹스 어필이 인상적인 ‘Bon appetit’은 전성기의 팝 레퍼토리에 필적하는 대중성을 갖췄다.

헐거운 음악 얼개에서 'Chained to the rhythm'만은 단연코 수작이다. 시아(Sia)의 작곡과 백업 보컬, 맥스 마틴의 프로듀싱으로 디스코와 댄스홀이 근사하게 만났다. 곡 내내 넘칠 듯 찰랑이는 긴장감과 듣는 이를 힘차게 끌어당기는 멜로디, 방점을 찍는 스킵 말리의 랩까지 빠짐없이 탁월하다. 여기에 ‘우리는 편안한 거품 속에 사느라 골칫거리를 보지 못 하지’, ‘왜곡된 소리에 맞춰 춤을 추자’, ‘우린 우리들이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우린 모두 리듬에 매여있어’ 등 다분히 정치적인, 그리고 통렬한 메시지로 곡의 가치를 높였다. 음반의 성패와 상관없이 노래는 올해의 댄스 싱글로 손색이 없다.

스탠스의 변화를 꾀한 좋은 의도와 달리, 산만한 내러티브와 싱거운 음악으로 설득력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 비욘세의 < Lemonade >가 입체적 서사와 흡수력 높은 음악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면, < Witness >는 노랫말과 음악 양쪽 모두 영글지 않아 떨떠름하다. 다만 이런저런 가면을 벗어던지고, 얄팍하게나마 인간 ‘캐서린 허드슨’의 속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는 의미는 유효하다. 설령 그 표현이 어설프고 서투를지언정, 진지한 마음은 반드시 전해지는 법이다.

-수록곡-
1. Witness [추천]
2. Hey hey hey
3. Roulette [추천]
4. Swish swish (Feat. Nicki Minaj) [추천]
5. Deja vu
6. Power
7. Mind maze
8. Miss you more
9. Chained to the rhythm (Feat. Skip Marley) [추천]
10. Tsunami
11. Bon appetit (Feat. Migos) [추천]
12. Bigger than me
13. Save as draft
14. Pendulum [추천]
15. Into me you see
정민재(minjaej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