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Prism
케이티 페리(Katy Perry)
2013

by 여인협

2013.10.01

1. 처음 케이티 페리의 신보 소식을 유튜브로 확인했을 때, 가장 관심을 끌던 티저 영상은 단연 케이티 스스로 자신의 파란 가발을 불로 태우던 영상이었다. 케이티 페리 이미지의 근간인 '솔직 발랄한 팝 스타'와의 결별을 뜻하는 암시와 함께, (그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변화의 일부로 여겨지던 '포커페이스'를 함께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결과적으로 영상을 이런 방식으로 해석했던 이들에게, 이번 앨범은 '부분적인 만족'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케이티 페리는 여전히 케이티 페리다. 다만 두 가지, 조금 더 다양해진 음악적 접근과 이전의 파티 걸에서 벗어난, 조금은 보편적인 여자로서의 모습을 제외한다면.

3. 두 가지 모두, 목적어보다는 '조금 더'라는 부사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변신이라고 하기에는 밋밋하고, 그렇다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듣지 않는다면 그 정도를 쉽게 캐치할 수 있는 수준의 변화도 아니다. 결국 '안정적인 변화'를 선택한 셈이다.

4. 신선한 재미, 혹은 파격은 확인하기 어렵다. 전작을 관통했던 솔직하고 도발적인 분위기는 'Birthday'가 일부 잇고 있으며 'Fireworks'의 열광은 'Roar'와 'Legendary lovers'가 계승하고 있다. 모두 평균은 하는 곡이지만, 전작만큼의 대중적 선택을 받기에 멜로디 흡인력이 다소 부족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5. 음악적 변화의 모습은 1990년대 댄스팝의 가벼움과 하우스의 희뿌연 공기를 섞은 'Walking on air', 중동의 사운드를 전면에 차용한 'Legendary lovers',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힙합 넘버 'Dark horse'와 같은 트랙들에서, 태도의 변화는 'This moment', 'By the grace of God'와 같은 후반부 트랙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다양성이 정돈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은 맹점으로 다가온다.

6. 'This moment', 'By the grace of God'에서 들리는 '현재에 충실하자'는 메시지와 고통 극복을 이야기하는 자전적인 가사는 어쩌면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던 케이티의 모습에 반(反)해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1984년생인 만큼 'Teenage Dream'과 같은 판타지보다는 이런 텍스트가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접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변화를 지지할 수 있는 이유다.

7. 한 앨범 안에 다양한 스타일이 중구난방으로 혼재한다는 점, 강력한 초반 3연타에 비해 이후의 곡들이 가진 매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등 앨범 단위의 지속 감상을 막는 요인이 몇몇 있다는 점은 약점이다. 특히 'Walking on air'와 'Dark horse'가 시작하는 부분은 시쳇말로 '갑툭튀'의 느낌이 강해 한 앨범 안에 있을 곡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8. 이야기하고 보니 두 곡 모두 싱글로 선발표된 곡들이다. 앨범보다는 개별 싱글로 듣는 편이 더 즐거운 감상에 용이할 것이다.

9. '팝'으로서의 가벼움은 유지했지만 균형감은 잃었다. 보편성은 획득했지만 유니크함은 포기했다. 뮤지션의 성숙한 면모를 담았지만 그 성숙을 매력적으로 포장하지는 못했다. 케이티 페리의 < Prism >은 그런 앨범으로 들린다.

10. 이미 가발은 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가발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무시 못 할 숫자일 것 같다.

-수록곡-
01. Roar [추천]
02. Legendary lovers [추천]
03. Birthday [추천]
04. Walking on air
05. Unconditionally
06. Dark horse
07. This is how we do
08. International smile
09. Ghost
10. Love me
11. This moment
12. Double rainbow
13. By the grace of God [추천]
여인협(lunarianih@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