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록으로 대중 가수 커리어를 개시한 케이티 페리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린 것은 < Prism >을 발표한 2013년의 일이다. 유로 댄스 넘버 ‘Walking on air’와 로빈 스타일의 비트를 가져온 ‘This moment’로 댄스의 조짐을 드러낸 후 2017년 < Witness >는 아예 신스팝 중심으로 꾸렸고, < Smile >에서도 'Teary eyes’ 등의 댄스 트랙이 숨어있었다. 제드와의 2019년 싱글 ‘365’와 2021년 알레소와 협업한 ‘When I’m gone’ 등 DJ와의 꾸준한 제휴를 보면 댄스에 빠진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간의 청사진을 참고하여 설계도를 그렸다면 차라리 좋았겠다. 프로듀서 기용 관련 잡음이나 사브리나 카펜터, 채플 론처럼 2010년대 케이티 페리의 영향권 아래 놓인 신세대 가수와의 비교를 부차적 요소로 미뤄두더라도 < 143 >의 마감은 영 엉성하다. < Teenage Dream >과 < Prism >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가 추구한 ‘다크 팝’은 음악적 소신의 표현으로 보기에는 생기가 보이지 않고, 상업성의 추구라기에도 힘이 약하다.

기본 작법부터가 부실 공사다. 대표적인 예시가 ‘Gimme gimme’와 ‘Gorgeous’. 서두에 제시한 주제부가 특색 없는 벌스 사이 세 번에 걸쳐 되풀이되는 양상 속에 마땅한 사운드 레이어의 추가도, 파워풀한 고음 애드리브도 부재하니 빠르게 지루해진다. ‘E.T.’, ‘Dark horse’, ‘Bon appétit’ 등 과거에도 게스트를 초대한 어두운 음악은 있었지만 도입부에 한 번, 브릿지에 두 번 랩을 가미한 이후 하이라이트를 크게 터뜨린 기존 패턴과 달리 철저히 속전속결 전개를 택하고 있어 흥미로워질 기미가 있는 ‘Artificial’마저 큰 흔적을 남길 시간을 갖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간단성이 댄스 음악의 기본이라고는 하나 이에 과하게 의존하고 있다. 리드 싱글 ‘Woman’s world’가 지나치게 유치한 가사로 모든 기대감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기세 좋게 시작한 ‘Nirvana’ 또한 무성의한 반복 끝에 마주하는 결말은 다소 싱겁다. 앨범에서 가장 명쾌하고 직관적인 ‘Lifetimes’도 활기찬 하우스 건반에 비해 훅이 밋밋하여 마땅한 ‘기-승-전’ 없이 ‘결’만 내달리는 전개가 낳는 피로감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는 편이다. 혁신에 목매는 전자음악 애호가들을 무시하더라도 정성 들인 구조만으로 만족하는 팝 키덜트 세력까지 저버릴 필요는 없었다.

뒤로 갈수록 기력을 확 소진하는 최근 추세와 달리 여전한 강점을 짚어주는 후반부가 오히려 버팀목이다. 2010년대 EDM 풍 ‘All the love’는 화사한 분위기로 전반부 누적된 칙칙함을 걷어내고, 딸 데이지 도브 블룸에게 전하는 마지막 트랙 ‘Wonder’는 ‘케이티 페리 표 앤썸’에 으레 바라는 희망적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크리스탈 워터스의 ‘Gypsy woman’ 샘플을 사용해 팝 록 영역 밖에서도 케이티 페리의 보컬이 선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I’m his, he’s mine’은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의 간극을 봉합하는 신선한 발견이다.

비록 붕괴를 맞이했으나 진취적 시도를 펼친 < Witness >, 의외의 기발함을 보여줬던 < Smile >과 비교했을 때 < 143 >가 케이티 페리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앨범임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신보를 세기의 졸작으로 치부하는 폭격 세례는 분명 과열된 감이 있다. 향수 재현에 힘쓰라는 의견과 과거를 묻어두라는 요구가 모질게 교차하는 상황에서, 막연히 고집으로 밀고 나가는 와중에 미약하게라도 뜻밖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경로상 언젠가는 만나게 되었을 작품으로 생각한다면 숙원사업을 완수한 그는 지금 적어도 후련해 보인다.

-수록곡-

1. Woman’s world

2. Gimme gimme (Feat. 21 Savage)

3. Gorgeous (Feat. Kim Petras)

5. Crush

8. Nirvana

9. Artificial (Feat. JID)

10. Tr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