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도 깊어진 사회적 시각과 빈틈없이 잘 조직된 사운드가 환상의 이중주를 이루는 블랙홀의 최고 걸작 앨범. 메탈 밴드라기엔 어딘가 허전해 보이는 3인조 진용으로 음반을 만들었음에도 부족한 부분이란 느껴지지 않는다. 연주는 한층 더 세밀하고 정교해졌으며 그에 따른 곡들의 흡인력도 한층 레벨 업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수평적, 수직적으로 뻗어 있는 밴드의 농익은 정치, 역사 의식이다.
밴드는 지역감정의 골('1:4의 갈등')과 권력을 둘러싼 야합과 밀월관계('공생관계')를 질타하며, 망각되고 있는 동학혁명의 정신('잊혀진 전쟁')과 뜨거웠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열기('마지막 일기')를 노래한다. 그 바짝 선 메시지는 뜬금없는 넋두리로 기화하지 않고 그와 조응하는 음의 표현 속에서 호소력을 지닌 멋진 텍스트로 분한다. 또한 '깊은밤의 서정곡', '내 품으로'로 연결되는 발라드 계보는 어느 때보다도 유려한 선율의 '잠들지 않는 그리움'으로 이어지며 간과할 수 없는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 빼어난 노작(勞作)은 카리스마적 통제력을 가진 밴드의 조율사 주상균의 작사, 작곡 능력과 5척 단구(153㎝)로 상상을 뛰어넘는 파워를 선보이는 김응윤의 해머 드러밍, 적재적소에 알맞은 리듬을 배치하는 정병희의 적확함이 혼연일체로 용해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외국 그룹의 음악들을 카피하기에 바빴던 국내 메탈 씬에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