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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신해철
1990

by 김두완

2005.12.01

마니아 성향의 음악을 줄곧 선보이는 현(現) 신해철의 과거형은 '팝'이다. 1990년대 초반 솔로 활동 당시 부각되었던 미소년의 외모와 고르게 뽑아내는 미성은 한 때 그의 5할이었다. 1998년 토이의 객원가수 출신인 변재원의 데뷔 앨범과 2000년 록의 포메이션을 표방한 아이돌 그룹 문차일드(Moon Child, 현 MC The Max)의 데뷔 앨범 등 그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몇몇 작품들에서는 그의 녹슬지 않는 팝 센스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과외 활동들은 '안녕'을 부르던 아이돌 가수 신해철에 대한 팬들의 옛 기억을 환기시킨다.

무한궤도 활동 이후 선보인 신해철의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발라드와 팝을 주 메뉴로 한다. 이 앨범에서 그는 '너무 어려워'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의 작사와 수록곡 절반의 작곡을 직접 해내며 유능한 신인 가수의 등장을 공표한다.

그가 원투 펀치로 내세운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와 '안녕'은 공중파 방송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크게 선전하며 그의 대중음악계로의 성공적 입성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와 함께 연극을 소재로 한 가사와 장엄한 건반 연주가 조화를 이루는 '연극 속에서'도 모종의 히트를 기록한다. 특히, 탄력있는 베이스 라인으로 전개되는 '안녕'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영어랩의 적극 도입으로 가요라는 울타리 안에 노랫말 쓰기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무한궤도 시절부터 신해철과 함께 음악 활동을 하며 이 후 그룹 공일오비의 수장이 되는 정석원의 앨범 참여는 주목할 만하다. 'P.M. 7:20'는 무한궤도 시절 그가 작곡했던 '거리에 서면'과 닮은 곡으로, 그윽한 도시의 향취를 풀어 놓는 재즈풍의 선율이 단아하게 울려 퍼지는 신해철의 음색과 잘 맞아 떨어진다.

또한 경쾌한 리듬 파트가 곡 전반을 리드해 나가는 '함께 해요'는 트윈 기타의 간결한 유니즌 플레이 이후 터지는 화려한 기타 솔로가 곡에 부족한 파워를 채워주며, 인생을 주제로 한 깊이 있는 가사가 특징인 발라드곡 '인생이란 이름의 꿈'은 건반을 사용한 음산한 느낌의 간주가 대담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정석원의 곡들은 각각 고유의 분위기를 머금고 작품 중반부에 포진되어 있다.

이 외에도 쉬운 멜로디 위에 사랑 고백의 어려움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놓는 '너무 어려워'와 보사노바 리듬 위에 이국적인 기타 선율이 돋보이는 '아직도 날 원하나요', 그리고 우울한 느낌의 건반과 색소폰 연주가 한 편의 슬픈 드라마 주제곡을 연상시키는 '고백'등이 앨범의 구미를 돋운다.

최초이자 최후가 되어버린 무한궤도의 1989년도 앨범은 멤버들의 안정된 작곡 능력과 더불어 참신한 실험성이 무엇보다도 돋보인 앨범이다. 그렇지만 한 해가 바뀌어 발매된 신해철의 데뷔 앨범에서는 그와 같은 실험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록 편성에 입각한 업템포의 곡들과 재즈에서 보사노바까지 여러 장르를 도구로 삼은 발라드 곡들이 적절히 배치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중 친화적 작품이다. 그러나 새로운 싱어송라이터 '신해철'을 알린 뜻 깊은 행보이며 아이돌 스타로 시작한 그의 음악 여정의 근본적 시발점이라는 데에 이 앨범에는 남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수년간 활동을 하는 음악인들에게 그들이 내놓는 개개의 작품들은 전(前)과정의 결과물이자 후(後)결과물을 향한 반성의 과정이다. 이듬해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해철의 두 번째 솔로 작 < Myself >(1991)는 변태를 위한 고통의 과정을 그 자신이 얼마나 감내해 내었는가를 가늠케 하는 후결과물이 된다.


-수록곡-
1.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신해철 작사 / 원경 작곡)
2. 떠나보내며 (신해철 / 신해철)
3. 너무 어려워 (석훈 / 석훈)
4. P.M. 7:20 (신해철 / 정석원)
5. 함께 가요 (신해철 / 정석원)
6. 안녕 (신해철 / 신해철)
7. 인생이란 이름의 꿈 (신해철 / 정석원)
8. 연극 속에서 (신해철 / 신해철)
9. 아직도 날 원하나요 (신해철 / 신해철)
10. 고백 (신해철 / 신해철)

프로듀서: 신해철
김두완(ddooba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