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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무도회
비비(BIBI)
2022

by 김호현

2022.10.01

가식이 만연한 사회에 관한 냉소적인 시선을 담은 ‘가면무도회’는 한국의 대중음악 현장에선 흔치 않게 사회적인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곡의 부제 ‘Animal farm’은 이 사회가 거짓과 위선으로 희생자를 양산하는 실패한 혁명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드러낸다. 고전적인 소울 음악의 형식 위에 세련된 보컬을 얹어 잔인하고 염세적인 가사를 처연하게 내뱉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티스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시도하기 힘든 용기 있는 방식이다.


한편 호불호가 갈리는 뮤직비디오에선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다소 얄팍한 측면이 있다.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영화 < 킬빌 >이 과거 액션 영화들에 대한 헌사로 충분한 빌드업 과정을 거친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 것에 반해 ‘가면무도회’의 뮤직비디오에선 피가 낭자한 충격적인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차용한다. 이에 사뭇 진지한 가사가 가려져 끈적한 붉은 빛만이 의미를 상실한 채로 부유한다.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감상했을 때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가면무도회’는 음악만 재생되었을 때 더 좋다.

김호현(hoizm7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