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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V.A(Various Artists)
2023

by 김진성

2023.08.01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2000)을 위시해 < 짝패 >(2006), < 부당거래 >(2010). < 베를린 >(2013), < 베테랑 >(2015), < 군함도 >(2017), 그리고 < 모가디슈 >(2021) 이후 2023년 최신작 < 밀수 >로 돌아온 영화감독 류승완. < 범죄의 재구성 >(2004), < 타짜 >(2006), < 도둑들 >(2012), < 암살 >(2015) 등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과 함께 천만 관객동원에 성공한 쌍두마차로 화제가 됐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유사한 성향의 작품목록을 가진 그가 이번에 발표한 < 밀수 >는 보는 재미는 물론, 듣는 쾌감까지 일거양득의 만족을 주는 작품.

1970년대 군부정권 하에 여수와 부산 등지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가공하고 오락성을 가미한 < 밀수 >는 역사적 사실을 풍자적 터치로 그려낸 한편, 두 여성을 중심으로 뭉친 여인들의 승리에 방점을 찍음으로써 고전 남성주의 액션 활극의 틀을 깬다. 극 중 전국구 밀수왕 권필삼 역을 맡은 조인성의 멋진 격투 액션이 시선을 강탈하지만, 류승완 감독 연출작 < 밀수 >(Smugglers, 2023)는 김혜수의 조춘자와 염정아의 엄진숙, 두 여인의 우정과 배신, 그리고 재결합을 통한 통쾌한 복수극을 범죄 코믹 액션물 장르에 근거해 보여준다.

197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전개하는 서사극에 따라,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음악들 또한 그때 그 시절을 재소환하는 당대의 노래들로 꽉 채워졌다. 음악의 비중이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연속장면을 지원하는 지시 곡으로 나오지만, 대부분 극의 이야기 전개상에 등장하는 소스 음악(Source Music)으로 작동해 흥을 돋우는 구실을 한다.

사운드트랙에 쓰인 노래들의 면면들이 시대의 명곡 메들리, 그중에서도 춘자와 진숙을 위한 주제가 '앵두'와 조인성의 권필삼을 위한 주제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필삼 역의 조인성이 장도리와 일당들을 대적할 때 멋지게 깔린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종영인물자막과 다수의 장면에 춘자를 위한 노래로 등장하는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와 같은 사운드트랙 삽입곡들이 가장 인상적이며, 그때 그 시절 다방과 나이트클럽을 장식한 노래들이 등장인물의 내면을 대변하거나 장면에 부합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시대를 대표하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한국 록의 대부인 신중현과 한국 포크록의 대명사 한대수를 위시해 김추자, 김정미, 박경희, 펄시스터즈, 김 트리오, 나미와 머슴 아들, 송대관, 이은하와 같은 명가수와 밴드들의 명곡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 밀수 >의 OST는 영화와 꼭 맞는 ‘짝패’, 맞춤형 음악 코디가 압권이다.

배경음악은 장기하와 김춘추(하세가와 요헤이/일명 양평이형)가 작곡과 편곡을 해냈다. 특히 1960-70년대 대한-록(Rock)에 이끌려 온 하세가와의 음악적 본류가 펑크(Punk)를 비롯한 영국과 미국의 록 음악에 뿌리를 대고 있다는 것, '신중현', '산울림', '데블스' 등, 한국의 당대 록 밴드와 음악가들의 창작력에 매료됐다는 사실에 따라, 장기하와의 공작으로 영화 <밀수>에 사용한 음악의 질료는 '사이키델릭(Psychedelic)', '펑크'(Punk)', '훵크(Funk)', '재즈'(Jazz)', '포크록(Folk-Rock)' 등과 같은 1970년대 고고 사운드에서 뽑아낸 것임을 알 수 있다.

< 샤프트 >(Shaft)의 아이삭 헤이즈(Isaac Hayes)와 < 더티 해리 >(Dirty Harry) 시리즈의 랄로 쉬프린(Lalo Schifrin) 등, 1970년대 범죄 액션 스릴러 수사물에 주로 쓰인 스코어의 음악적 뿌리 또한 흑인 펑크와 재즈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새겨 볼 필요도 있을 것, 심지어는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 스코어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배경음악의 질료는 사운드트랙에 실린 여러 노래와도 연관해 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배경 무대와 의상 등 퇴행적 복고를 지향한 작품성에 따라 그 시절의 대중음악과 다양한 음향의 질료들로 가득, 레트로 사운드(Retro Sound)가 영화의 매력을 더하는 OST. 영화 < 밀수 >는 따라서 디지털시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돌고 도는 유행의 신복고(New-tro)를, 영화 속 시대를 관통한 기성의 장년과 노년층에게는 아주 오래전 전성기 때의 진한 향수를 다시금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소스 음악으로 사용된 노래 목록]
01. ‘앵두’(1978) - 최헌 노래, 안치행 작사와 작곡
영화의 도입부를 포함해 춘자와 진숙이 제각기 직접 노래하기도 할 만큼, 극 중 김혜수의 조춘자와 염정아의 엄진숙, 두 여인을 위한 주제가와 같은 노래.
02. ‘잘살아보세’ - 한운사 작사, 김희조 작곡
동시대를 대표하는 새마을 운동 노래 중 하나,
03. ‘하루아침’(1974년 1집 앨범 ”멀고 먼 길“에 수록) - 한대수 노래, 작사, 작곡
1970년대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을 위한 노래.
04. ‘연안부두’(1979) - 김 트리오 노래, 조운파 작사, 안치행 작곡
영화 초반 해녀들을 태운 맹룡 호 내에서 재생되어 나오는 노래.
05. ‘님아’(1968년) - 펄시스터즈 노래, 신중현 작사와 작곡
06. ‘님아’(기타 버전) - 신중현 작사와 작곡
필삼과 춘자가 선상에서 건배하는 장면에 재생
07. ‘새마을 노래’(1972) - 박정희 작사와 작곡
선착장에서 울리는 새마을 운동 노래
08. ‘행복’(1979년 프랑코 로마노 밴드와 함께 낸 앨범 수록곡) - 나미와 머슴 아들 노래, 장세용 작사와 편곡
09. ‘해뜰날’(1975) - 송대관 노래와 작사, 신대성 작곡
몰래 숨겨서 세관을 통과하려는 밀수꾼들과 현장에서 체포하려는 세관원들과의 대치 장면.
10. ‘바람’(1973) - 김정미 노래, 신중현 작사와 작곡
11. ‘미운 정 고운 정’(1979년 프랑코 로마노 밴드와 함께 낸 앨범 수록곡) - 나미와 머슴 아들 노래, 장세용 작사와 편곡
12.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1969) - 김추자 노래, 신중현 작사 작곡
월남에서 돌아온 권 상사, 조인성을 위한 노래.
13.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1978) - 박경희 노래, 조용호 작사, 김기웅 작곡
김혜수의 춘자를 위한 노래, 가사의 의미와 상통하는 춘자의 스토리텔링과 같은 노래. 조인성의 권필삼과 군천에서 만나는 장면을 포함, 춘자가 등장할 때 재생.
14. ‘밤차’(1978) - 이은하 노래, 유승엽 작사와 작곡
군천 나이트클럽에서 라이브로 공연.
15.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1978) - 산울림 노래, 김창완 작사 작곡
조인성의 필삼이 춘자를 피신시킨 후 장도리와 그의 일당들을 대적하는 연속장면에 재생됨. 반복하는 베이스 리듬이 액션의 긴박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
16. ‘무인도’(1974) - 김추자 노래,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
춘자와 진숙, 그리고 고옥분과 해녀들이 합세해 해경 계장 이장춘과 장도리 일당을 물리치고 3억 원어치 다이아몬드와 금괴 등이 든 가방을 쟁취한 후 배를 돌려 빠져나오는 종극 장면.
김진성(saintopia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