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문을 열어/따라갈 필요는 없어”라 외쳤던 'I am'의 가사가 무색하게 많은 것이 겹쳐 보인다. 베이스라인을 강조한 'Off the record'는 피프티 피프티의 'Cupid'와 태연의 'Weekend'가 레퍼런스로 삼은 도자 캣의 분홍색 디스코 감성을 닮았고, 'Baddie'의 사운드 질감과 랩 위주의 구성에서 에스파의 'Savage'와 NCT의 잔향을 지우기란 쉽지 않다. 전통적인 색채로 '정통성'을 손에 쥐었던 아이브가 눈치를 많이 보고 있다.
그동안 확고한 캐릭터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한 그룹이기에 익숙한 무기를 내려놓은 이번 전략은 다소 의아하다. 사실 직전 정규 앨범 < I've IVE >에서도 여러 장르적인 시도를 펼치긴 했으나 핵심으로 배치하지는 않았기에 < I've Mine >의 태도 전환은 조금은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짐작하자면 맹렬한 고음과 선명한 멜로디 라인 중심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 대한 경계, 그리고 이에 맞춰 여타 경쟁자들을 벤치마킹하여 해외 시장의 반응을 탐색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익숙한 영역을 떠나 새 물결에 맞춰 흘러가기 위해서는 긴장을 풀어야 한다. 한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몸이 아직 경직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Either way'가 대표적으로, 속도와 밀도를 모두 낮춘 만큼 곡을 이끌어야 할 멤버들이 음색과 발성에 힘을 빼지 못하고 있으니 직설적인 가사에 화자가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다. 데뷔곡 'Eleven'이 떠오르는 에스닉한 리듬에 연극적인 요소를 삽입한 'Holy moly'도 뻣뻣함이 두드러지니 어수선한 '무대 음악' 인상만이 강하다.
애써 포인트를 주려는 'OTT'보다 앙증맞은 분위기에만 집중하는 'Payback'이 더 매혹적인 이유도 같은 이치다. 아예 '될 대로 돼라' 식의 뻔뻔한 태도가 답일 수도 있다. 멜로디컬한 부분을 최소화하고 시종일관 건조하게 밀고 나가는 'Baddie'의 랩을 듣고 있으면 기시감과는 별개로 소화력에 대한 의문은 크게 들지 않는다. 가장 재밌는 케이스는 'Off the record' 쪽이다. 강세를 준 발음과 강조되는 비음 등 장애물 위에 뮤지컬 < 캣츠 >의 넘버 'Memory'나 카디건스(The Cardigans)의 짤막한 'Lovefool' 샘플링을 시니컬하게 툭툭 던지고 있으니 시선이 적당히 분산된다.
쨍한 빛깔의 RGB로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으니, 다음 차례는 벤 다이어그램의 빈 곳을 채우는 일일 수밖에 없다. 흔들림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으나 타의에 의해 등 떠밀리기 전 오답을 지우기 시작한 것은 고무적이다. 지금 당장은 아플지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어차피 필요했던 백신 예방접종이다. 그리고 적어도 주사기는 그들 스스로 쥐고 있다.
-수록곡-
1. Off the record [추천]
2. Baddie
3. Either way
4. Holy moly
5. OTT
6. Payback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