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인터뷰
블랙홀
2019년 이즘과 첫 번째 인터뷰를 진행했던 30년차 메탈 밴드는 4년이 흐른 2023년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멤버 교체와 팬데믹의 고난에도 공연 중심의 가열찬 행보를 이어간 34년차 밴드 블랙홀을 노들섬 라이브하우스에서 열린 “블랙홀 34주년 기념 콘서트” 현장에서 만났다. 블랙홀 티셔츠를 입고 일찌감치 공연장에 대기 중인 팬들의 설렘처럼 네 멤버 주상균(보컬/기타), 이원재(기타), 김세호(베이스), 이관욱(드럼)에게도 공연 직전 달콤한 흥분이 감돌았다.
블랙홀의 키워드는 소통이다. 2019년 유튜브 개설 이후 2022년 6월엔 국내 최초 록 플래시몹 “로그인 프로젝트"와 밴드가 각 지역에 직접 찾아가는 “블랙홀 원정대 콘서트” 등 다채로운 콘텐츠로 팬들과의 교류를 다각화했다. “공연을 해야 밴드며, 블랙홀이다”란 리더 주상균의 말처럼 퍼포먼스 미학을 강조한 이들은 34주년 콘서트에서도 ‘깊은 밤의 서정곡’과 국악을 도입한 ‘삶’ 등 드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펼쳐냈다. 상투적인 말이겠으나 블랙홀 같은 팀이 있어야 후배 메탈 밴드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이들은 분명 훌륭한 귀감이며 현재진행형 전설이다.
2019년 이즘과 인터뷰한지 약 4년이 흘렀습니다. 그가 밴드에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상균: 굵직한 변화는 멤버의 변화다. 9집 < Evolution > 발매 이후 다양한 형식으로 콘서트를 열었고, “로그인 프로젝트”라고 하는 대형 플래시 몹도 진행했다. 유튜브로 팬들과 활발하게 소통 중이기도 하다.
“로그인 프로젝트”에 관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주상균: 2019년 유튜브 채널 개설 이후 팬과의 소통이 늘었고, 생각보다 팬들중 연주자가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과 함께 무대를 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팬들이 자체 녹음한 블랙홀 노래를 믹싱을 거쳐 차곡차곡 축적해놓았다. 어느 정도 분량이 되었을 즈음에 전라도 공주의 야외 무대에서 플래시 몹을 진행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플래시 몹 주요 콘텐츠는 '깊은 밤의 서정곡'과 'Item'같은 블랙홀의 곡들과 콰이어트 라이엇(Quiet Riot)의 'Cum on feel the noize'같은 메탈 명곡들이다.
2019년에 정규 9집 < Evolution >을 발매한지 약 4년이 흘렀습니다. 정규 10집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요?
주상균: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2~3년 안에 낼 계획이다. 현재 진행중인 공연 및 활동을 마친 후 본격적인 음반 작업에 들어갈 것 같다. 블랙홀의 음반들은 앨범 간 서사의 연결 고리와 앨범 내부 서사가 중요하다보니 아무래도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기존 앨범명부터 각 음반의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고 있다.
30년 넘게 활동할 수 있는 어떤 어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원재: 당연한 얘기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다. 멤버간의 갈등도 적은 편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보니 설정한 목표를 이루고 또 다음 챕터를 향해 달려가다보니 자연스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역시나 오랜 세월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가장 소중하다. 팬들이 활동의 자극제가 되어준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형식의 공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블랙홀에게 공연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주상균: 연주가 음악의 시작점이다. 블랙홀은 4명이 모여 만든 하나의 인격체며 연주자들은 그 인격체의 부분인 셈이다. 그런 인간적인 면모로 인해 공연이 중요하다. 각 부분들이 때론 조금 어긋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론 조화를 이루며 블랙홀이 존재 의의를 내뿜는다. 앨범 아이디어도 공연 중에 나오는 것이다. 공연할 수 있어야 밴드지 않겠는가? 그래서 멤버들이 건강해야한다.
이관욱: 연주자와 관객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독특한 기류가 있다. 블랙홀에게 그 순간이 갖는 의미가 무척 크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흥분하면 실수할 수도 있다. (웃음)
제58주년 4.19 혁명 기념식(2018)이나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2019)같은 정치, 사회 관련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예술가로서 견해를 피력한 것인가요?
주상균: 모든 예술가들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으로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들다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살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벤트에 초대받은 것에 가깝지 꼭 해당 기념식에 참여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블랙홀 1집 < Miracle >(1989)은 종종 한국 메탈 명반으로 거론됩니다. < Miracle > 이외에 디스코그래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앨범을 소개해 주신다면?
주상균: 어떤 곡들은 메트로놈에 맞춰 베이스를 연주하고 해당 베이스 트랙에 맞춰 드럼을 연주하는 식으로 녹음 방식의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4집 < Made In Korea >(1995)이 특별하다. 8집 < Hero >는 독일 헤비메탈 밴드 레이지(Rage)의 빅토르 스몰스키(Victor Smolsky)가 프로듀싱했다. 메탈 선진국의 뮤지션과의 협업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빅토르 스몰스키와의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주상균: 한국적 메탈을 구현한 < Hero >를 해외에서 선보이고 싶었다. 국내 어느 관계자의 도움으로 빅토르 스몰스키와 작업하게 되었고 그와 부산락페스티벌에도 같이 섰다.
블랙홀은 늘 사운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향후 발매할 정규 10집에도 색다른 시도를 기대할 수 있는건가요?
주상균: 음악에 있어서 “꼭 이래야 한다”라는 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은 늘 그런 고정관념을 깨려고 한다.
블랙홀은 서사와 주제적으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밴드입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가져오는건가요?
주상균: 결국엔 다 사람 사는 이야기고 그게 거슬러 올라가 역사란 이름으로 불린다. 감명 깊은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겪어온 사람 향기나는 이야기였다. 블랙홀은 그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헤비메탈은 서구권에서 시작한 음악이지만 블랙홀은 메탈에 한국적 미학을 도입했습니다.
주상균: 한국 메탈밴드들은 그 당시에 서구 메탈 음악을 카피하며 시작했다. 물론 카피한 서구 메탈 밴드들은 자신의 문화와 이야기를 노랫말과 사운드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래서 블랙홀 1집을 낼 때 “우리도 우리 얘기를 한국어로 해보자”라고 마음먹었고 전 곡을 한글로 썼다. 당시 반응은 “너흰 영어가 아니라 헤비메탈이 아니야”었다. (웃음) 데뷔 앨범까지만 해도 음악을 업으로 삼을 생각은 안 했기에 체계적인 접근법을 가져가진 못 했으나, 2집 < Survive >부터 본격적으로 '녹두꽃 필때에'의 국악적 요소 등 “한국적인 무언가”를 구현하려 힘썼다.
대중에겐 '깊은 밤의 서정곡'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 이외에 완성도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던 곡이나 한 번쯤 재조명되었으면 하는 곡이 있을까요?
대중에겐 '깊은 밤의 서정곡'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 이외에 완성도 측면에서 만족스러웠던 곡이나 한 번쯤 재조명되었으면 하는 곡이 있을까요?
이원재: 팬들이 1993년 발매된 프로젝트 앨범 < Power Together >에 수록된 '내 곁에 네 아픔이'를 좋아해주신다. 대중적으론 '깊은 밤의 서정곡'보다 덜 알려졌지만 블랙홀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발라드가 아닐까 한다.
주상균: 특별히 없다. 앨범 만드는 건 내 마음이지만 팬들의 마음을 얻는 건 다른 이야기더라. 원래 '깊은 밤의 서정곡'도 1집 < Miracle >의 주요 곡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길이도 5분 30초대라 라디오에 나오긴 너무 길었다. 스피디한 메탈 넘버 가운데 한 곡 정도 부드러운 락 발라드를 넣은건데 외려 이 곡이 가장 사랑받게 되었다.
각 멤버들에게 영향을 준 뮤지션을 공유해 주세요.
주상균: 중학교 때 피터 프램튼의 라이브 음반 < Frampton Comes Alive! >(1976)에 수록된 'Show me the way'를 좋아했고 프램튼 같은 기타리스트를 꿈꿨다. 헤비메탈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밴드는 헬로윈. 유럽과 일본의 메탈을 접하며 블랙홀의 음악적 방향성을 정립했다. 전영혁의 <24시의 데이트>를 통해 접한 헬로윈의 1987년 작 < Keeper Of The Seven Keys – Part 1 >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이원재: 잡지 보면서 딥 퍼플 연대기 외웠던 기억이 난다. 'Child in Time'이 수록된 라이브 명반 < Made In Japan >(1972) 즐겨 들었다. 나이 차이가 있는 누나가 전축에서 틀어준 카펜터스와 돈 맥클린같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팝송도 기억난다. 에릭 클랩튼의 더블 라이브 음반 < Just One Night >(1980)는 기타리스트로서 영향 받은 작품이다.
이관욱: 아무래도 다른 멤버들보다 나이가 아래다 보니 즐겨 들었던 밴드도 좀 다를 것이다(웃음) 크게 세 가지 흐름을 따랐는데 메탈리카를 중심으로 한 스래시 메탈과 헬로우니 계열의 유러피언 스피드 메탈 그리고 머틀리 크루가 대표하는 소위 LA메탈이라고 부르는 팝메탈을 많이 들었다.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중입니다. 기획 중인 콘텐츠가 있을까요?
이원재: 따로 전문가를 두고 하는게 아니라 팬들과의 창구로 운영하는 정도다보니 지금 하는 콘텐츠 만으로 벅찰때가 있다(웃음) 그래도 리더 주상균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 점점 채널이 풍성해지고 있다.
예전 가요의 엘피 재발매가 활발합니다. 블랙홀도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원재: 블랙홀이 당시 EMI 소속이었는데 EMI가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자료 복원을 위한 소통이 어렵다. 음원 권리에 대한 내용들도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공연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요?
주상균: 34주년 기념이다보니 더욱 특별하다.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팬들과 교류하는 차원의 공연이다. 블랙홀의 경력을 아우르는 셋리스트를 준비했다.
이원재: 이젠 팬들의 나이도 만만찮다(웃음)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점에서 역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블랙홀과 팬들이 서로 건강해야 오래도록 공연할 수 있다.
블랙홀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주상균: 현재는 음악의 일상화가 지상 과제다. 롱런하는 외국 뮤지션들을 보면, 공연과 합주가 생활에 그대로 녹아있다. 블랙홀도 어떤 식으로든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려고 합니다. 조금 더 큰 목표는 그간 블랙홀의 공연에 와주고 음반을 구매해 준 모든 팬들과 잠실 스타디움에서 만나는 것이다.
진행: 염동교, 김성욱
사진: JEIPIX 제공
정리: 염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