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부터 궤를 달리한다. ‘Youth’를 부르짖던 스무 살의 골든 보이는 이제 없다. 어느덧 데뷔로부터 약 8년, 서른의 나이를 앞둔 트로이 시반은 < Blue Neighbourhood >의 순수미를 < Bloom >에서처럼 깔끔하게 가공, 진정 ‘순수’한 쾌락주의로 치환하여 이를 화려하고 향락적인 퀴어 댄스 플로어에 고스란히 이식한다.
리드 싱글 ‘Rush’는 그 획기적 변화의 시작이었다. 뮤직비디오 도입부터 벌건 둔부를 노출하며 무자비하게 타오르는 하우스 난교는 스스로가 변화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집약함과 동시에 여러모로 상당한 충격을 선사했다.
충격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 Blue Neighbourhood > 속 우수에 찬 눈빛의 소년이 헐벗은 난교의 중심으로 뛰어들었다는 시각적 사실이었고, 또 하나는 ‘Rush’의 빼어난 완성도와 압도적인 전달력, 그리고 대단히 적합한 방향성이 이러한 격변에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한다는 청각적 사실이었다. < Blue Neighbourhood >, < Bloom >에서 줄곧 이어오던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채의 일렉트로 팝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심히 격정적이고 펑키한 하우스로 노선을 변경한 이 선택은 시의성과 대중성, 작품성을 단숨에 쟁취하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고, 이에 따라 ‘Rush’가 이끄는 차기작 < Something To Give Each Other >에는 전보다 몇 배는 큰 기대가 쏟아졌다. ‘현대 남성 댄스 팝의 구세주’라는 평가 또한 그의 정면에 내려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허나 막상 작품의 전면(全面)이 공개되자, 커다란 기대는 상당히 오묘한 감정으로 변모했다. 적합한 변화도 충분히 존재하고, 앨범 내의 유기성 또한 깔끔하며, 각 트랙의 전반적인 완성도 또한 결코 나쁘지 않으나 어딘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불편한 잔향의 일차적 원인은 메인 트랙 ‘Rush’와 이를 일차적으로 지탱하는 주요 트랙들 사이 뚜렷한 신선도 차이에 있다. 인터넷 밈으로 유명한 백 레이더스(Bag Raiders)의 ‘Shooting stars’를 샘플링한 ‘Got me started’의 시도는 창의적이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One of your girls’의 레퍼런스 사용 또한 다소 안일하다. 그나마 산뜻한 두 번째 트랙 ‘What’s the time where you are?‘이 고압적인 첫 트랙과 나머지 유순한 트랙들을 안정적으로 이어준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나머지 대부분 잔향은 이전의 몽환적 기조를 새로 도입한 사운드와 맞춰가며 발생한 빈틈에서 기인한다. 초고밀도의 ‘Rush’는 물론, 익숙한 작법인 만큼 소리의 촘촘함을 잃지 않았던 전작 < Bloom >과 비교하여도 본작의 전반적인 짜임새는 다소 허술하다. 특히 작품의 기조와 크게 엇나가는 ‘Still got it’이나, 보컬과 비트의 조화가 안정적이지 못한 ‘Silly’ 같은 경우 이러한 흐릿함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리드 트랙에 한정한다면 커리어의 압도적 정점이겠지만 앨범 전체로 눈을 돌리면 번뜩이는 장면이 많지 않은 과도기적 작품이다. 작법을 가다듬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를 기대할 근거는 충분하지만 확실히 아직은 그 찰진 감칠맛이 덜하다. 부족한 맛을 채우기 위해 어떤 재료를 넣을지, 조리법은 어떻게 바꿀지, 불 조절은 어떻게 할지, 선택은 모두 알몸에 앞치마를 두른 셰프의 몫일 것이다.
-추천곡-
1. Rush [추천]
2. What’s the time where you are? [추천]
3. One of your girls [추천]
4. In my room (Fear. Guitarricadelafuente)
5. Still got it
6. Can’t go back, baby
7. Got me started
8. Silly
9. Honey [추천]
10. How to stay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