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과 27일 양일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 <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 >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공연장은 마왕의 10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한달음에 모인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오랜만에 울려퍼질 그의 음악에 부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이번 공연은 ‘열 번째 기일’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맞아 넥스트 멤버들이 다시 뭉쳐 화제를 모았고, 홍경민과 김동완을 비롯해 이승환, 싸이, 국카스텐, 넬 등 선후배 가수들이 뜻을 모아 그를 추억했다.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인 의도와 그에 걸맞은 규모. 그러나 공연 방식에 있어서 흡족함과 의구심으로 양분될 관객을 생각하니 우려가 마음을 졸여왔다. 그의 명곡으로 가득 채운 것이 아닌 자신의 노래 서너 곡에 신해철 노래 한 곡 정도를 추가해 무대를 꾸리는 식이었다. 모두 곡과 곡 사이 추모의 뜻을 전했으나 셋리스트 상 질감이 다른 곡 간의 괴리감과 다분히 느껴지는 신곡 홍보 목적, 신해철과 접점이 없는 아티스트 출연 등 갖가지 이유가 맞물려 물음표를 남겼다. 더구나 이틀 모두 잡아내지 못한 음향 문제와 시각적 연출에서의 실수는 엎친 데 덮친 격 몰입을 방해했다.
물론 만족을 느낀 관중도 많을 것이다. 페스티벌을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라인업과 그만큼 넓어진 장르 폭은 각기 다른 자극을 선사했고 무엇보다 다섯 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물리적 밀도까지 채웠으니 충분히 포만감을 느낄 만하다. 어떻게 마음에 남았느냐는 해답 없는 질문은 각자의 소회에 맡겨두기로 하고 양일간의 무대를 돌아보며 마왕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본문 속 순서는 공연 순서와 관련이 없으며 특기하지 못한 뮤지션도 있음을 알린다.
N.EX.T Is Alive
넥스트가 콘서트를 할 때면 2집 <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 >에 수록된 대곡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를 첫 곡으로 놓고, 신해철은 긴 전주를 고음으로 뚫으며 화려하게 등장하곤 했다. 이번 콘서트 또한 이 문법에 충실했다. 몰아치는 드럼과 일렉트릭 기타는 초장부터 관객의 혼을 빼앗았고 ‘Lazenca, save us’로 이어진 홍경민의 유연한 보컬은 단번에 열기를 끌어올렸다. 이후 플라워의 프론트맨 고유진은 ‘The dreamer’와 ‘Hope’를, 신화의 김동완은 ‘Money’와 ‘Komerican blues’로 신바람을 돋웠다.
그러나 세 보컬의 가창력보다 중요한 것은 단연 돌아온 넥스트 멤버들이었다. 베이스 김영석, 드럼 이수용, 기타 김세황. 신해철과 넥스트의 전성기를 함께한 영광의 주역들이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눈빛만으로 정확한 박자에 맞아떨어지는 호흡은 마치 몸이 기억하는 듯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각자의 솔로 파트에선 건재한 기량을 뽐내며 팬들의 눈물을 훔쳤다. 이튿날, 국카스텐에게 ‘Lazenca, save us’를 양보한 대신 ‘도시인’을 선곡하고 첫날 싸이가 불렀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가져와 유동적인 레퍼토리를 가져간 점과 한데 모여 마지막 인사를 전한 단체곡 ‘영원히’까지. ‘넥스트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하며 포문을 여는 동시에 일찌감치 찾아온 클라이맥스 그 자체였다.
한계를 넘거나 한계에 부딪히거나
마마무의 솔라와 슈퍼주니어의 예성이 라인업에 올랐을 때 모름지기 대다수의 팬은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신해철의 음악 결과 좀처럼 접점이 없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일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반은 뒤집기에 성공했고 절반은 우려를 불식하지 못했다.
솔라의 무대는 후자에 해당한다. 신해철의 솔로 2집 < Myself >에 수록된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열창했으나 직전 격렬한 춤사위를 동반한 본인 곡 무대는 불안한 호흡을 남겨 차후 진행에 영향을 주었고 가사 실수 등 변수가 더해지며 감흥을 떨어뜨렸다. 신곡 홍보 기회에 관한 조건으로 “신해철 노래 하나만 불러주세요.”를 제시한 건 아닐까 하는 지나친 생각이 무대 도중 들었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신호다. 옆자리에 앉은 한 신사가 뱉은 혼잣말이 생생하다. “근데 이거 추모 공연 아니었나?”
반전의 주인공은 예성이었다. 어느덧 19년 차 가수가 된 그는 솔로 활동 시기의 곡을 무난히 마치고는 헌정곡으로 ‘일상으로의 초대’를 완벽하게 끌어안았다. 원곡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혼연의 힘을 다해 열창하는 그에게선 ‘추모’의 감정이 오롯이 느껴졌고 후반부 나직이 깔리는 내레이션 파트에 원곡의 목소리를 오버랩한 편곡은 이 무대를 위해 분주히 고민한 흔적이었다. 진심을 더한 무대에 관객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나아가 아이돌 가수를 향한 일정 선입견을 타파할 수 있는 훌륭한 무대였다. 명실상부 이날 최고의 무대 중 하나.
너비와 깊이를 모두 잡은 싸이의 노련함
토요일의 끝은 싸이의 몫이었다. 출연자를 통틀어 신해철과 가장 가까운 사이를 유지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진한 교류를 이어온 그이기에 유독 큰 기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현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드는 데에는 정평이 나 있는 그는 ‘챔피언’, ‘연예인’, ‘강남스타일’ 등 본인의 브랜드 콘서트나 여느 대학 축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예상 범위 내의 선곡을 이어갔다. 평소 ‘딴따라’ 이미지를 자칭하는 그에게 음학(音學) 수준의 음악력을 전수해 준 선배 신해철을 향한 ‘음악인’ 싸이 본유의 것을 바랐지만 그런 그는 이곳에 오지 않았다. 싸이의 공연을 좀처럼 접해보지 못한 이에게는 감탄을, 비교적 익숙한 이에게는 낯익은 현장감만을 남겼다.
그러나 진정한 무대는 앙코르를 유도하며 시작됐다. 히트곡 메들리를 함께한 댄서들을 내려둔 채 밴드 세션과 다시 오른 무대, 넥스트 4집에 수록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시작으로 ‘나에게 쓰는 편지’와 ‘그대에게’까지 총 세 곡을 완창하며 마지막 순서에 걸맞은 엔딩을 연출했다. 신해철과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가사로 옮긴 싸이의 일곱째 앨범 < 칠집싸이다 >의 수록곡 ‘Dream’을 고르지 않은 점은 계산을 빗나갔으나 댄스곡 일편에서 벗어나 밴드와 같이한 군더더기 없는 무대는 단연코 신해철과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넬과 국카스텐, 각자의 지점에서 넥스트를 잇다
신해철은 < 고스트 스테이션 > 디제이 시절, 인디 차트를 꾸리거나 인디 밴드를 위한 코너를 마련할 만큼 후배 사랑이 지극했다. 넬과 국카스텐 모두 그런 그의 총애를 받은 밴드다. 그가 하늘에서 두 무대를 지켜봤다면 분명 ‘역시 얘네가 제일 낫네’하며 무심하게 한 마디 던졌을 것이다.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 시작해 ‘무홍’과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광란의 전개와 흠잡을 데 없는 기타 연주는 가히 이날 최고의 레퍼토리였다. 모든 것을 쏟아부은 뒤 관객과 함께 ‘날아라 병아리’를 부르며 숨을 고르는 모습에선 잘 짜인 순서와 노련함마저 엿보였다.
넬이 첫날 넥스트의 영혼을 걸머졌다면 다음 날에는 국카스텐이 해당 포지션을 담당했다. 수많은 관객은 ‘우리 동네 음악대장’이 부르는 ‘Lazenca, save us’를 기다렸다. 전날 홍경민이 넥스트와 함께 해당 곡을 선보였지만 이틀 차에는 하현우를 위해 ‘도시인’으로 바꾼 만큼 그 또한 부담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노련하게 목적을 달성했다. 폐부를 찌르는 고음은 불멸의 기병 라젠카를 살려냈고, ‘거울’과 ‘나침반’ 등 강렬한 로큰롤 트랙 가운데 ‘일상으로의 초대’를 추가해 먼저 떠난 고마운 선배를 향한 아련한 송가를 띄워 보냈다.
윤백의 과정으로 순백의 신해철을 그린 에피톤 프로젝트
이튿날 무대에 오른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은 CD 한 장을 집어 들었다. 1998년 발매한 신해철의 세 번째 솔로 앨범 < Crom’s Techno Works >였다. 어릴 적 그의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채웠다는 그는 해당 앨범에 수록된 ‘It’s alright’를 재해석해 온화한 위로의 가사를 흩뿌렸다. 공연 전 가수별 담당 곡이 미리 공개되었을 때, 에피톤 프로젝트가 부르는 ‘그대에게’는 좀처럼 예상되지 않았다. 차세정의 방향은 원류에 있었다. 대학가요제 입상을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던 신해철이 아닌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멜로디언을 불던 어린 신해철을 떠올렸다. 모두가 흥겨워하지만 사실 그 어떤 곡보다 슬픈 곡은 ‘그대에게’가 아닐지 생각한다며 한 꺼풀씩 벗겨낸 편곡에 남은 건 결국 통기타와 건반뿐이었다. 간주 중 눈을 감고 직접 멜로디언을 부는 그에게서 마왕의 앳된 잔상이 비쳤고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에선 진정을 느꼈다.
이승환과 신해철, 이름만으로도 아련한
일요일 공연은 신해철의 기일에 열렸다. 전날에 비해 마음가짐이 달라진 둘째 날, <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 >는 이승환의 무대로 막을 내렸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승환은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함께 ‘아버지와 나 part 3’로 제작했으나 끝내 발매되지 못한 녹음본을 직접 프로듀싱해 무대에 올린 적 있다. 제목은 ‘Starman’. 앞선 파트와 이어지는 내레이션에 “지구의 별이 되어 살다, 우주의 별로 돌아”간다는 노랫말을 붙여 이 시대의 영원한 별로 남은 그를 기렸다. 신해철이 말년에 발매한 원 맨 아카펠라 곡 ‘A.D.D.A’의 수많은 오버 더빙 트랙을 오마주해 겹겹이 쌓아 올린 두 사람의 화음으로 이승환은 무대를 시작했다.
이승환도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나 ‘사랑하나요!?’, ‘천일동안’과 같은 히트곡을 펼쳐나갔으나 의도적으로 ‘물어본다’와 ‘돈의 신’처럼 시의성이 담긴 곡을 선보이며 변주를 뒀다. 그러자 곧바로 논객 신해철의 형상이 떠올랐다. 이승환과 신해철을 한데 묶어 떠올려보면 왜인지 자꾸만 가정을 하게 된다. ‘만약 두 사람이 서태지와 함께 마태승 콘서트를 했다면?’, ‘지금 이승환에게 신해철이라는 동생이 있었다면?’과 같은 질문들이다. 좋지 않은 목 상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를 열창하는 그의 모습에선 이제는 가정의 상태로만 남을 수밖에 없는 무심했던 지난날의 후회가 비쳤다.
미처 지면에 싣지 못한 뮤지션이 더 있다. 예컨대 전인권은 들국화와 전인권 밴드의 곡을 이어가다 공연 말미에 1987년 발표한 ‘사랑한 후에’를 가창했다. 해당 곡은 지난 2001년, 록 신의 후배들이 합심해 한국 록의 대부 들국화에 헌정한 앨범 < A Tribute To 들국화 >에서 신해철이 그에게 바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곡이다. 외에도 < Monocrom >의 대표곡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를 선보인 베테랑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 솔로 1집의 타이틀 곡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부른 김범수, 넥스트 4집 < Lazenca A Space Rock Opera >에 실린 ‘먼 훗날 언젠가’를 커버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까지 장르와 연차의 장벽 없이 광범위하게 분포한 동료 음악인들의 무대로 신해철이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함께 나눴다.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되었다고 해서 이 정도 규모의 트리뷰트 콘서트를 열고 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사례는 아직 신해철이 유일하다. 그의 추모 공연에서 역설적으로 그의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없던 점은 분명 아쉬울 수 있는 요소지만 반대로 생전의 신해철을 생각해 보면 본인의 10주기를 명분 삼아 후배들이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장을 갖는 일을 더욱 반겼을 것이다. 정확한 리뷰를 위해 각 무대마다의 퀄리티 차이를 지적하고 연출상의 쟁점을 짚었지만, 때론 평가보다 감성이 중요할 때가 있다. < 마왕 10th: 고스트 스테이지 >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해철을 새기고자 먼 곳까지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의 ‘한마음, 한뜻’이 가장 중요한 공연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자리를 자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넥스트 멤버들의 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것이고, 삶에 지쳐 잊고 살아갈 때쯤 분명 반가운 소식을 알리리라. 이럭저럭 눈 깜짝할 새 지난 10년, 사무치는 그의 음악 위로 다시 한 번 명복을 빌어본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기 위해
난 너에게 머물렀던가
연인에서 타인이 되기 위해
넌 그렇게 서둘렀던가
갑자기 아찔한 어지러움을 느꼈지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 ‘외로움의 거리’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