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지고 연해지고 조금은 완만해졌다.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잘 팔린 앨범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리라. 1970년대 말과 1980년에 발매한 두 음반, < Fear Of Music >과 < Remain In Lights >에 비했을 때 이번 작품은 확실히 팝적인 형상을 띈, 굳이 강약의 정도로 따지자면 그 세기가 분명히 줄어든 작품이다. 첫 트랙으로 치고 나오는 'Burning down the house'나 펑크(funk) 사운드에 포인트를 둔 'Making flippy floppy', 'Girlfriend is better' 같은 트랙들이 특징적이고 또 뚜렷하다 해도 예의 곡들과 병치시킨 대열 속에서는 사실 다소 약해 보인다.
그러나 분명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이다. 각양의 퍼커션과 신디사이저, 코러스를 비롯해 여러 음향효과로 공간감을 가져가려는 방법론은 이번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쌓고, 쌓고 또 쌓아 물량공세로 사운드를 때려 박던 < Remain In Light >의 인상이 강렬했기에, 그리고 조금은 더 팝 지향적인 컬러로 곡들을 썼기에 연화된 느낌이 음반에 퍼져있는 것이지, 편곡과 프로듀싱으로 에너지를 분출해내는 방향은 결국 동일하다. 펑크(funk) 리듬 위로 신디사이저를 널찍하게 활용한 'Girlfriend is better'와 퍼커션의 톤을 특히나 강조한 'Burning down the house', 코러스에서 높은 집중도를 보이는 'Slippery people', 월드 뮤직의 잔향이 도는 'I get wild : wild gravity'와 같은 곡들은 직전의 음악들과 비슷한 형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증거라 할 만 하다.
브라이언 이노의 유산일지도 모르겠다. 유투의 < Unforgettable Fire >를 프로듀싱하기위해 일찌감치 뉴욕을 떠났음에도 브라이언 이노가 없는 음반에는 여전히 그의 울림이 존재한다. 물론 모든 향방을 조종하는 전권은 프론트 맨인 데이비드 번에게, 그리고 토킹 헤즈에게 쥐어져 있었으나 영국에서 건너온 사운드의 마술사에게 이들은 많은 것을 사사받았다. 켜켜이 쌓아 올리는 사운드스케이프가 그렇고 월드 뮤직을 향한 탐구가 그러하며 이번 앨범에서도 확실히 눈에 보이는 스튜디오에서의 음향 공학이 그렇다. 음반은 펑크(funk)와 뉴 웨이브 펑크, 전자음악에 약간의 브라이언 이노가 여러 양상으로 섞인 실험의 작품이다. < Fear Of Music >과 < Remain In Light >를 잇는 탐험의 결정체이기도 하지만, 사실 탐험의 연쇄를 교묘하게 끊어버린 종언이자 마침표이기도 했다. 바통을 이어받는 다음 앨범 < Little Creatures >는 훨씬 더 쉽고 대중 친화적인 사운드를 품고 있다.
-수록곡-
1. Burning down the house [추천]
2. Making flippy floppy [추천]
3. Girlfriend is better [추천]
4. Slippery people
5. I get wild : wild gravity [추천]
6. Swamp
7. Moon rocks
8. Pull up the roots
9.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