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Collision Course
린킨 파크(LINKIN PARK)
제이 지(Jay-Z)
2006

by 하광화

2006.10.01

록음악은 흑인의 블루스에서 태동했지만 철저히 백인주류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전원 흑인으로 구성된 리빙 컬러(Living Colour)와 흑인 데리어스 러커(Darius Rucker)가 보컬을 맡은 후티 앤 더 블로우피시(Hootie And The Blowfish) 정도가 '록으로서' 그나마 백인주류들의 눈에 띄었다. 한편 힙합은 랩과 함께 1970년대 말 뉴욕의 클럽과 거리에서 생겨난 흑인 신세대 음악으로 흑인주류문화를 통칭하는 장르적 언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록과 힙합(랩)'은 20년 전만해도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였다. 1986년에는 팝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러한 고정관념의 틀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런디엠씨(Run DMC)가 기 발표곡 'Walk this way'(1977)를 랩 버전으로 재녹음하여 록그룹 에어로스미스(Aerosmith)에게 건네면서 동업을 제안했고 에어로스미스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그룹의 대담한 시도는 'Walk this way'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4위까지 오르는 기록을 낳으며 상호 '윈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침내 검은 기름과 투명한 물이 한데 섞인 것이다.

'Walk this way' 뮤직비디오에서 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벽을 깨고 단일화를 이루는 장면이 실제로 재현된다. 뮤직비디오 안에서 에어로스미스와 런디엠씨는 편견의 벽 사이에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엔 벽을 깨고 공연장에서 함께 어울려 춤추며 음악을 분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록과 힙합의 크로스오버가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을 신나게 보여준다. 이들의 용감한 도전에 록과 힙합 가수들은 상업성을 노린 전략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최초의 도전과 시작에는 모두가 박수를 보낼 수는 없는 법. 그 정도의 희생과 질타는 감내하는 것이 주인공들과 팬들에게는 현명한 자세였을 것이다.

전례와 같이 제이 지(Jay-Z) 또한 상대적으로 동질감을 느낄만한 인물(그룹에서 랩을 맡고 있는 래퍼)인 린킨파크(Linkin Park)의 마이크 시노다(Mike Shinoda)에게 합작음악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마이크 시노다 역시 제이 지의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린킨 파크 팀 자체도 일렉트로니카와 힙합의 비트를 진실로 존중하며 음악의 자양분으로 적극 활용하던 팀이었기에 제이 지의 제의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2004년 11월, 린킨 파크와 제이 지는 마침내 여섯 트랙이 실린 공동명의의 EP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

각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뮤지션들이 기획한 이 앨범은 발매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고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앨범 제목도 < Collision course >(2004)이었다. 기대 반 우려 반, 대형사고가 터질 것만 같았다. 6곡만이 수록되어 있어 질적 소구력도 클 것으로 기대되었다.

서로에 대한 포용을 기본으로 한 산물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기존에 발표한 각자의 곡들을 이어서 하나의 트랙을 완성하고 서로의 반주부분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식을 취했다. 제이 지는 린킨 파크를 린킨 파크는 제이 지를, 서로의 장르와 스타일 속에서 음악적 흥분을 나누면서 독특한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과 이해, 친밀감이 만들어낸 소산이었다. 수록된 6트랙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적응'이라는 음악의 위대한 단면이 드러나 있다.

'Izzo/In The End'을 들어보면 'Izzo' 사운드 아래 시행된 제이 지의 랩은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다른 부분들은 힘을 잃고 축 처져있다는 것 또한 인지할 수 있다. 'Izzo'와 'In The End'가 개별적으로 존재했을 때에는 두 곡 다 대중들을 강하게 흡입하는 힘을 발휘했지만 믹스된 이 곡에서는 그러한 기질이 확연히 부족했다. 믹스음악으로는 못내 아쉬운 곡인 것이다.

한편 3곡을 믹스한 'Points Of Authority/99 Problems/One Step Closer'는 상당한 퀄리티(Quality)를 도출해낸 곡이다. 특히 곡이 'One Step Closer'로 바뀌지만 제이 지의 '99 Problems' 랩이 계속되는 부분과 '99 Problems' 랩이 끝나가는 무렵에 발산되는,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의 'Shut Up'이라고 강렬하게 외치는 부분은 이 곡에서 가장 인상적이다. 이러한 구성요소들이 잘 배합되었기 때문에 곡 자체의 흐름은 꽤 안정적이었고 높은 완성도를 산출하게 되었다.

앨범의 타이틀곡 'Numb/Encore'는 그 중에서도 지표가 될 만큼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디지털 싱글이 정상에 등극한 것과 함께 여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2005년 그래미시상식에서 'Best Rap/Sung Collaboration'(최우수 랩/노래 합작)부문을 공동 수상해 겹경사를 누렸다. 앨범차트까지 평정한 크로스파워는 그야말로 기세등등했다. 이 곡은 제이 지의 명성과 함께 흑인 청취율이 높은 라디오 방송에 자주 소개되었고, 린킨 파크는 그 덕분에 흑인들에게 자연스레 어필할 수 있었다. 제이 지 또한 합작앨범 발매 이후 린킨 파크와의 공연을 통해 백인들의 대중적 지지도를 더욱 확장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제이 지는 최근 나스(Nas)를 자신의 레코드사로 데려오는 가계약을 맺었다. 10여 년 이상 앙숙으로 지내며 디스 랩을 통해 서로를 비방하던 둘 사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관계의 회복이든 실리를 챙기기 위한 외교든 의외의 만남이 동반상승효과를 이뤄낸다면 뮤지션이나 팬들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 아닐까?

부분적으로 유사한 비트와 사운드를 추구하긴 했지만 그간 그들이 추구해오던 음악스타일은 전반적으로 상이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합작음악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것을 향한 음악적 갈증과 더불어 이 프로젝트가 대중들의 변화무쌍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의 음악적인 창조와 재창조가 불가능할 때 기존의 것에서 적당한 것들을 끄집어 내 새로 조립하고 다듬어내는 방식 또한 충분히 획기적일 수 있다. 음악이나 대중적 지지도가 정점에 올라 하향세로 들어설 찰나에 시행된 제이 지와 린킨 파크의 기획음반 발표는 매우 시기적절했다. 대중음악은 항구히 대중에게 소비되고 공유되는 개체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상충의 장벽을 뚫고 21세기형 흑백크로스오버의 새장을 연 이들의 음악적 동맹은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후대에 귀감이 될 사례로 남을 것이다.

-수록곡-
1. Dirt Off Your Shoulder/Lying From You
2. Big Pimpin'/Papercut
3. Jigga What/Faint
4. Numb/Encore
5. Izzo/In The End
6. Points Of Authority/99 Problems/One Step Closer
하광화(khha@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