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타운이 버트 바카락을 만났을 때”
27세 청년이 '거장을 닮아가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존 레전드는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재능이 있다. 두 번째 음반 < Once Again >을 들어 보라. 스티비 원더의 팬이던 이 흑인 젊은이는 1960년대 모타운 식 문법을 빌려와 버트 바카락의 고급스런 피아노 선율에 충실히 재현시켰다. 이를 보더라도 레전드는 먼지 낀 장르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간 넘치는 신세대 뮤지션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달리 말해서 < Once Again >은 참 순수하다. 그러면서도 노래의 속살은 몹시 우아하고 로맨틱하다. 비평적 찬사를 획득한 데뷔 앨범 < Get Lifted >가 1970년대 향수로 얼룩진 소울 샘플을 들고 나왔다면, 레전드는 < Once Again >을 통해 1960년대 팝과 R&B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 당시 샘 쿡, 스모키 로빈슨, 마빈 게이의 노래를 떠올려보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크런크(Crunk) 스타일의 디지털 사운드가 미국의 주류 팝 채널을 오르내릴 때, 역으로 레전드는 노스탤지어를 부추기는 편안한 곡으로 우리에게 다시 왔다. 데뷔 첫 해에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의 영예가 많은 부담이 됐을 법도 한데, 그는 거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애초 소포모어 징크스 따윈 염두에도 없었다.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그에게 그게 무슨 걸림돌이란 말인가.
앨범의 커버 사진이 실증하듯이 레전드는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 갖고도 충분히 청중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멜로디를 창조해냈다. 그의 사운드는 낭만적인 아름다움과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이미 팬들의 호응을 끌어들인 첫 싱글 'Save room'과 젊은 세대의 연애를 그린 'P.D.A. (We just don't care)' 같은 곡은 최신 흑인 팝과 달리 거부감이 없고 멜로디가 살아 있다. 역시 그답다.
그런데 음반의 초반 분위기는 전통 소울을 표방했던 1집 때와 얼추 다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첫 곡 'Save room'부터 'Show me'까지 내리 4곡을 듣고 있노라면 약간의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카니예 웨스트가 제작을 맡은 두 번째 싱글 'Heaven'이나 부드러운 록 발라드 'Show me'를 들으면 제프 버클리와 크리스 마틴의 음색이 연상된다. 그건 분명히 레전드의 음악성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는 숨은 증거다.
그럼에도 < Once Again >은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아름다운 곡조가 넘실댄다. 사랑을 노래한 피아노 발라드 'Again'과 'Another again'은 제목처럼 음반이 담고자 한 핵심을 파고들었다. 풍부한 가창력과 피아노 솔로는 단연 베스트다. 전작의 히트곡 'Ordinary people'과 'So high'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를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레코드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요즘 가수들의 음악에 비한다면 내용물은 결코 흠잡을 때 없다. 주로 곡들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시각을 펼쳐놓는데, 반전을 노래한 엔딩 송 'Come home'은 레전드의 정치적 성향이 예리하게 묘사됐다. 결국 버트 바카락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듯한 그 노래들 속에서 우리는 레전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또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는지, 진솔한 그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앨범의 홍보용 속지를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그가 마빈 게이 혹은 스티비 원더처럼 예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임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 격찬은 '흑인 음악계의 거물' 퀸시 존스가 한 말이다. 여기에서 존 레전드에 대한 평은 끝난 게 아닐까. 올해의 앨범이 아니더라도 따뜻하고 순수해서 반갑다. 모타운이 버트 바카락을 만난 바로 그 느낌이다.
-수록곡-
1. Save room
2. Heaven
3. Stereo
4. Show me
5. Each day gets better
6. P.D.A. (We just don't care)
7. Slow dance
8. Again
9. Maxine
10. Where did my baby go
11. Maxine's Interlude
12. Another again
13. Coming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