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생, 65세 노인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밥 딜런(Bob Dylan)의 2006년 신작. 그가 전미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지난 1976년 < Desire > 앨범 이후 30년만의 일이다. 자신과 세상을 진지하게, 때로는 안타깝게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고령 뮤지션의 고백(통산 44번째 앨범)을 환대하는, 아니 최소한 인정하는 미국의 음악계와 팬들은 확실히 부럽다. 그런 점이 우리를 압박한다.
지난 1997년 < Time Out Of Mind(정신을 잃은 세월) >와 2001년 < Love And Theft(사랑과 사기) >에 이어 부박(浮薄)한 지금의 세상, 그 현 시대(Modern times)를 보는 한 뮤지션의 3부작 가운데 마지막이라고 한다. 진화한다지만 더 잔인하고 황폐해져가는 세상은 활기를 잃는 노년을 더욱 짓누를 것이다. 마지막 3부의 노래는 그래서 한층 톤이 낮고 'Spirit on the water'나 'When the deal goes down'과 같은 부드러운 발라드라 할지라도 우울하다. 연주로 볼 때 전체 분위기는 '묵시록'적이다.
밥 딜런의 음악에서 압도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노랫말이다. 이것에 들어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의 가사는 너무도 다의적이고 중의(重意)적이어서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블루스를 하는 알리샤 키스(Alicia Keys)를 언급하는 첫 곡 'Thunder on the mountain'부터 그의 의중이 자기 연민인지 세상에 대한 실망인지 확실하지 않다. '난 지금 여기 앉아 사랑의 예술을 공부하고 있지/ 장갑처럼 잘 맞는 것 같고/ 좋은 여성이 내가 말하는 것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지금 이 잔인한 세상에서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의구심을 갖고 있지...'
삶 전반이 주는 쾌감, 두려움, 실망, 축소의식, 의지 등 우리 시대 철학자의 눈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 없다. 'Spirit on the water'의 '그대가 나와 함께 있을 때/ 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천배 이상 더 행복했지/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어떤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라는 가사, '넌 언젠가 날 조금도 걱정하지 않을 거야'를 반복하는 'Someday baby'의 가사는 자신이 속한 음악환경에 대한 솔직한 토로, 바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사고의 테두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내 마음을 그대에게 빚지고 있지/ 그것은 사실이지/ 거래가 떨어지고 있을 때 난 그대와 함께 할 거야'라고 하는 'When the deal goes down'는 위축된 현실에서의 결코 가엾지 않은 희망의 단상이다. 'Beyond the horizon'은 그 나이에도 살아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랑의 감정이다. 물론 핵심은 데뷔 때부터 노동과 일상을 거부하며 곧추세운 자신의 힙스터(hipster) 시야를 그대로 지키면서 여전히 세상과 거리감을 두려는 '나그네' 감성이다. 'Working man's blues #2'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자신은 이방인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귀착 지는 마지막 곡의 단 한마디 '말하지 않아'(Ain't talking)다.
음악적으로는 일렉트릭 블루스의 전설 머디 워터스(Muddy Water)의 곡목과 같고 멜로디도 일부 차용한 'Rollin' and tumblin''과 역시 슬리피 존 에스테스(Sleepy John Estes)의 곡에서 따온 'Spirit on the water'가 웅변하듯 포크성 블루스가 주류를 이룬다. 누가 봐도 현재의 딜런을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음악적 도구는 블루스일 것이다. 잘 구르는 한편 항상 절실한 음조를 놓치지 않는다. 음악도 막상 귀 기울이면 이름의 무게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힘들지 않은 감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밥 딜런의 앨범은 음악이 아직도 진지한 사유를 담아내는 그릇임을 반추하게 만든다. 사실 앨범은 아티스트의 이야기와 팬들의 해석이 만나는 소통의 장이다. 우린 이것을 애써 잊으려고 한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토리 텔링이라는 그의 설법은 고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위력적이다. 거대한 존재감을 재확인시켜주는 앨범, 비록 그의 앨범 리스트에서 도드라진 명반은 아닐지라도 2006년의 여타 음반들 중에서는 단연 발군이다. 끝으로 프로듀서 이름으로 적힌 잭 프로스트는 밥 딜런의 가명이다.
-수록곡-
1. Thunder on the Mountain
2. Spirit on the Water
3. Rollin' and Tumblin'
4. When the Deal Goes Down
5. Someday Baby
6. Workingman's Blues #2
7. Beyond the Horizon
8. Nettie Moore
9. The Levee's Gonna Break
10. Ain't Talkin'
All Songs written and produced by Bob Dy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