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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Through Life
밥 딜런(Bob Dylan)
2009

by 이대화

2009.11.01

올해 4월, 딜런의 나이 68세에 발표한 통산 33번째 앨범 < Together Through Life >는 데뷔 직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역사상 가장 고령의 나이로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 기록을 세웠다. 이번 기록은 자신이 2006년 호평 일색의 찬사를 받은 명작 < Modern Times >로 1976년 < Desire > 이후 30년 만에 1위를 탈환하며 세운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 Together Through Life >는 지난 3부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속선상에 있다. 블루스 전도사로서의 이미지는 여전하며 그가 어린 시절 들으며 자랐을 법한 로큰롤 이전의 구수한, 때로는 찡한 컨트리, 발라드 곡들이 채우고 있다. 음악 저널리스트인 빌 플래너건(Bill Flanagan)은 이 앨범에 숨어 있는 체스(Chess), 선(Sun) 레코드의 색깔을 찾아냈고 밥 딜런은 이를 인정하기도 했다. 지금의 음악 팬들 입장에선 할아버지 세대의 음악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딜런은 나이를 잊지 않고 있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만 봐도 그렇다. 투어를 함께하는 밴드 멤버들을 기본으로 과거에 작업한 바 있는 몇 명의 음악 벗들을 초청해 합작했는데, 이들은 모두 50대 중반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기타는 1950생인 탐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의 마이크 캠벨(Mike Campbell)이 맡았고, 앨범 내내 흐르는 애수에 찬 아코디언 연주는 1954년생인 로스 로보스(Los Lobos)의 데이비드 힐다고(David Hildago)의 것이다. 'This dream of you'을 제외한 전곡의 가사를 공동 작업하며 딜런의 최대 장기인 '노랫말'의 큰 부분을 책임진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는 올해로 68살이다.

그 동안의 딜런의 행보를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거장적 향취가 듬뿍 담긴, 현 시대를 바라보는 나이든 노장의 은자적 메시지가 주를 이룰 것이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 Together Through Life >는 숙성된 내공이 발휘된 거장적 앨범인 것은 맞지만 세상을 노래한 앨범은 아니다. 이성에 대한 찬가나 이별의 아픔을 담은 슬픈 구애가(歌)들로 채워진 블루스 노래들 모음집이다.

< Together Through Life >는 여러모로 긴장감이 덜한 앨범이다. 느긋하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수록곡들의 연주, 구성, 멜로디 등도 전작의 'Thunder on the mountain', 'When the deal goes down' 같은 명작들에 비해 투박하고 풀어져 있다. 정확하게는 공들여 정제된 느낌이 덜하다. < Together Through Life >는 2008년 가을에 만들기 시작해 몇 달 만에 뚝딱 완성해 낸 작품이다. 부틀렉을 모은 < Tell Tale Signs >까지 더하면 그는 요즘 대단히 과작을 하고 있는 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대충 만든 앨범이 되었을 것을 그러나 딜런은 툭툭 내뱉어도 깊이가 느껴지는 충만한 노하우로 오히려 치열하게 만든 앨범에선 느낄 수 없는 편안한 여유와 생동감을 심어 놓았다.

딜런 음악의 백미는 역시 가사다. 물론 사랑에 관련한 그리 심각하지 않은 개인적 감상들을 늘어놓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심오함과 무게감이 덜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예스러운 경구들이 여럿 등장한다. 일례로, 사랑에 사로잡혀 행복감으로 충만할 때의 기분을 그는 이렇게 멋들어진 말로 빚어냈다. “이곳 너머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Beyond here lies nothing')” 'Life is hard'는 실연을 당한 한 남자가 “길도 잃고, 의지도 잃은” 어느 날 밤에 추억의 장소를 서성대다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당신이 곁에 없는 삶은 고단합니다”라고 되뇌는 1인칭의 고백을 담은 노래다. 'My wife's hometown'에서 발휘하는 블랙 유머도 만만치 않다.

'My wife's home town'에서 고령의 딜런의 목소리는 극도로 거칠다. 하지만 여유롭다. '앵앵'거리는 목소리 때문에 누구나 그의 보컬 능력엔 주목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두껍고 멋스런 허스키 보이스를 내는 것 같다. 'This dream of you'엔 컨트리 풍으로 연주한 바이올린이 쓰였다. 'Forgetful heart'엔 애팔래치안 밴조가 연주된다. 앨범 뒷면에 실린 흑백 사진은 유랑 밴드의 느낌마저 풍긴다. 앞면의 한 남녀가 포옹을 하고 있는 장면과 합치면 사랑의 감정을 미국의 전통 포크 음악들로 표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 Modern Times > 이후 다시 한 번 인기의 전성기를 맞은 딜런이 여전히 음악적으로도 정정하다는 걸, 그리고 여전히 쏟아낼 것이 많다는 걸 이 앨범은 말해준다. 불과 6개월 만인 지난 10월, 딜런은 생애 첫 크리스마스 앨범 를 또 내놓았다.

-수록곡-
1. Beyond here lies nothing 
2. Life is hard
3. My wife's hometown
4. If you ever go to Houston
5. Forgetful heart
6. Jolene
7. This dream of you
8. Shake shake mama
9. I feel a change coming on
10. It's all good

Producer : Jack Frost
이대화(dae-hwa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