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Coldplay)의 네 번째 앨범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를 요약할 수 있는 말은 바로 '변화'다.
무엇이 변했을까. 일단 음악 스케일이 '에픽'으로 변했다. 곡마다 버스-코러스가 뚜렷이 부각되었던 전과 달리, 앨범 전체를 하나의 캔버스로 놓고 크고 장대한 그림을 그렸다.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와 < X&Y >가 '4분 미학'의 정점이었다면,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는 '50분'을 범위로 놓고 작품 세계를 펼친다. 수록곡들은 앞뒤가 이어져있고, 한 곡 안에 두 노래가 합쳐져 있기도 하다.
사운드도 상당 부분 달라졌다. 보통 '콜드플레이 사운드' 하면 얼터-록 기타와 피아노 팝의 조화를 떠올린다. 애잔하고 감상적이지만 때론 거칠고 드세게 폭발하는 멜로딕 팝-록 사운드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킨(Keane)을 비롯한 숱한 콜드플레이 워너비들이 모방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신보에는 이것이 없다. 있더라도 비중이 희미하거나, 양상이 달라졌다.
대체 색(色)으로 선택된 것은 유투(U2)의 음악과 록 바깥의 다양한 음악 재료들이다. 앨범을 여는 첫 곡 'Life in technicolor'는 전형적인 디 에지(The Edge) 스타일의 전주로 시작하다가 곧 산투르라는 이란의 전통 악기를 사용하고, 'Yes'는 아랍 풍의 선율을 도입했다. 'Lost!'엔 가스펠 풍의 편곡이 등장하고, 'Strawberry swing'에 사용된 리프도 과거의 디스토션 걸린 기타 리프와는 상당 부분 다르다. 'Cemeteries of London'은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River'를 연상시킨다.
악기와 음악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면서 감성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 '내향' 내지는 '우울'로 통칭되던 이들의 음악은 더 이상 그런 '포스트 라디오헤드'적 단어만으론 수식할 수 없는 곳으로 나아갔다. 곡의 진행, 편곡들도 이젠 '팝-록'의 범위 안에 묶어 두기엔 너무 높은 곳으로 비상했다.
이런 일련의 변화들을 가장 잘 압축하는 곡은 바로 두 번째 싱글인 'Viva la vida'다. 피아노와 록 기타의 조화가 특징이던 과거와 달리 큰 스케일의 오케스트레이션이 전면에 부각되었고, 버스-코러스의 딱 떨어지는 전형적 팝-록 구성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변화의 폭이 큰 만큼 이에 따르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Violet hill'이 첫 싱글로 선택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Violet hill'은 비교적 예전의 콜드플레이 스타일과 맞닿아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하지만 기존 팬들과의 교감 또한 놓지 않으려는 노력(내지는 불안)으로 볼 수 있다. 'Violet hill'은 콜드플레이 역사상 처음으로 '반전' 메시지도 담은 곡이기도 하다.
이런 총체적 변화를 주도한 것은 바로 프로듀서를 맡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다. 이노는 밴드에게 다짜고짜 이렇게 훈계했다. “당신의 노래는 너무 길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반복만 한다. 게다가 당신은 같은 수법을 너무 자주 쓴다. 그리고 당신은 너무 같은 사운드만 사용한다.” 그는 콜드플레이의 음악이 더 어렵고 난해해질 필요가 있다고 보고,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적 접근을 권유했다. 밴드는 이것을 따랐고, 그래서 앨범은 전보다 모호하고, 장황하고, 거창하게 만들어졌다.
이것은 그러나 거장 프로듀서의 거부할 수 없는 강요가 아니라, 밴드가 스스로 원한 변화였다. 콜드플레이는 단 3장의 앨범으로 3300만장이란 성공을 거두었고, 세계적인 이목과 음악적 동경을 한 몸에 받는 대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골수 록-마니아들의 비판이 있었고, 스타일은 정체해갔다. < X&Y >는 비록 성공을 거뒀지만 이것이 표면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앨범이었다. 밴드는 더 성장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변화가 필요했다. 브라이언 이노는 그 때 나타났다.
이노를 택한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왜냐면 콜드플레이에게 절실했던 것은 바로 평범함을 거부하면서도 대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프로듀서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유투를 동시에 세계적 밴드로 끌어올린 브라이언 이노보다 더 나은 적임자는 없었을 것이다. 공동 프로듀서인 마커스 드라브스(Markus Dravs)도 비욕(Bjork),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와 작업한 사람이다. '일탈적이나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음반을 콜드플레이는 꼭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대하게 성장한 팝-록 밴드의 감춰진 욕망일까?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은 이 앨범이 히스패닉의 문화와 감성에 영향 받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이유는 교회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 녹음을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앨범 제목인 'Viva la vida'도 멕시코 출신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그림에서 따왔다. 새로운 곳에 날아가 이국적 감성을 담고, 녹음은 비범한 프로듀서를 만나 비범한 장소에서 했다? 이 사실이 신보의 음악적 변화를 유비적으로 압축하는지도 모른다.
앨범에 대한 평가는 대개 '한 발짝 진일보한 측면은 인정하나, 그것이 대단하거나 놀랍진 않다'는 식이다. 칭찬은 하되, 슬쩍 유보하는 셈이다. 그런데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는 분명 괜찮은 앨범이다. 스타일 확장에 분투했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특유의 마법 같은 훅은 잃지 않았단 점에서, 이런 앨범을 만들 사람은 이 시점에 흔치 않다. 크리스 마틴의 능력, 새삼 대단함을 느낀다.
-수록곡-
1. Life in technicolor
2. Cemeteries of London
3. Lost!
4. 42
5. Lovers in Japan
6. Yes
7. Viva la vida
8. Violet hill (Album ver.)
9. Strawberry swing
10. Death and all his fri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