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플레이의 대형 아레나 공연에서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앨범 단위 감상에서 감동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 A Rush Of Blood To The Head > 시절의 패기는 물론,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에서의 참신한 면모는 사라지고, < Mylo Xyloto >부터 꾸준히 유지한 총천연색 빛깔만이 남았다. 상실의 아픔을 그대로 담은 < Ghost Stories >나 음악적 실험과 사회고발의 장이었던 < Everyday Life >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순간은 일시적이었을 뿐, 곧 다시 무지개를 타고 우주를 유영하며 꿈처럼 행복한 순간들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언젠가부터 콜드플레이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들을 만들어주면서 이 세상의 행복에 기여하는 밴드가 되어야만 한다는 틀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고마운 의도긴 하지만, 그들의 몸집이 거대해질 때마다 음악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 괴리를 보여준 순간이 전작 < Music Of The Spheres >였다. 우주라는 거대한 콘셉트, 거창한 콜라보레이션과 프로모션에 비해 내용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그들도 자신들이 올라탄 무지개다리가 절대 영원하지 않음을 인지한 것일까? 작업마다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든다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다르다. 12집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10집 < Moon Music >이 세상에 나왔다. 전작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고, 이별의 순간을 계획한 사람의 모습이 그렇듯 다소 담담하다. 일상에서의 우울함을 떨쳐내고 밝은 앞날을 그리는 극복의 서사를 담은 특유의 서정성과 낙관주의 역시 여전하다. 하지만 그러한 분전에도 무지개는 다시 선명해지긴커녕 야속하게 사라져만 간다.
<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를 작업한 프로듀서 존 홉킨스와 함께 한 첫 트랙 'Moon music'은 전작의 마지막 트랙 'Coloratura'을 잇는 듯한 모습으로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유려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거창한 인트로와 달리, 바로 이어지는 'Feelslikeimfallinginlove'는 밋밋한 전개와 심심한 사운드로 큰 감흥을 남기지 못한다. 리틀 심즈, 버나 보이, 엘리아나, 티니가 함께 한 평화의 힙합 트랙 'We pray'는 콜드플레이의 아이디어 고갈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피쳐링 멤버들은 모두 분전했고, 스트링 세션도 인상적이긴 하나 정작 주인장 크리스 마틴이 곡에서 겉돌고 있다. 지난 BTS와의 콜라보곡 'My universe'에서도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단순한 가사 및 진행 구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사실상 버나 보이의 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콜드플레이는 주도권을 뺏긴 채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후반부의 트랙도 과잉의 연속이다. 특히 'Iaam'은 가장 웅장한 순간이었어야 했겠지만, 그저 모든 면에서 과한 총체적 난국이다. 심지어 크리스 마틴이 올라탄 멜로디는 훅에 이르면 안정감이 사라지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지나치게 존재감이 강렬한 드럼 비트는 감동이 아닌 피로를 주고, 참신한 요소가 전혀 없는 후반부 기타 솔로는 의무적으로만 등장하고 곧바로 소멸한다. 'Aeterna'는 멋진 공간감의 앰비언트도 아니고 즐거운 EDM도 아닌, 그저 일렉트로닉 요소를 뭉친 무언가를 던지고 퇴장한다. 'All my love'는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 그리고 크리스 마틴의 음색에 집중하면서도 정석적인 점진적 구성을 들려주지만, 과거 'Everglow'나 'Fix you', 'The scientist'와 같은 비슷한 결의 곡들과는 달리 큰 임팩트 없이 그저 흘러만 간다.
물론 번뜩이는 순간들이 느껴질 때도 있다. 단순한 구성의 어쿠스틱 팝 'Jupiter'는 < Mylo Xyloto >의 'Us against the world'나 < Everyday Life >의 'Èkó'처럼 지루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진행, 크리스 마틴 특유의 음색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랑 찬가다. 과거 성공적인 콜라보를 이루었던 체인스모커스가 참여한 'Good Feelings'는 그루비한 베이스라인과 즐거운 팝 터치로 무장한 앨범의 중심축이다. < A Head Full Of Dreams > 시절 스타일의 장점만을 뽑아낸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무려 6분에 달하는 대곡 '🌈'은 아름다운 공간감의 프로그레시브 팝으로서 이번 작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트랙들은 개별적으로만 빛나고 있을 뿐, 조화롭지는 않다. 물론 작품에 따라 다양한 트랙의 혼재는 강점이 되지만, 이 앨범에서만큼은 방향성을 확실하게 잡지 못하는 혼란처럼 들린다.
< Moon Music >은 어떻게든 남은 창작력을 쥐어 짜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에 더 안타까운 앨범이다. 스스로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굳은 결의는 물론,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과 다양한 프로듀서 기용으로 어떻게든 소생해 보려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한 분전 덕에 트랙마다 순간적으로는 전성기 콜드플레이의 편린이 느껴질 때가 있긴 하지만, 결국 앨범 자체는 무색무취를 넘어 부조화와 무리수로 가득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콜드플레이식 달나라 음악은 제대로 빛나지 못한 채 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거의 모든 곡에서 허전함을 채우고자 반복적으로 외치는 크리스 마틴의 애처로운 '라라라'만이 남아 공허한 우주를 떠돌게 되었다.
-수록곡-
1. Moon music
2. Feelslikeimfallinginlove
3. We pray
4. Jupiter [추천]
5. Good feelings [추천]
6. 🌈
7. Iaam
8. Aeterna
9. All my love
10. On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