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우리나라엔 '쌔끈한' 댄스 음악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근래 들어서는 일부 뮤지션과 프로듀서들이 국외에서 유행하는 동향을 빠르게 포착해 어떻게든 곡을 스타일리시하게 꾸며 보려는 시도가 증가하고는 있지만, 수많은 레이버의 눈은 눈썹을 넘어 이미 이마 위까지 올라간 상태, 그들의 높아진 기호를 완벽하게 맞추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혹여나 최신 경행에 영합하는 형식의 노래를 만들지라도 멜로디는 전통적인 가요 구성을 보여 이도 저도 아닌 메떨어진 댄스곡에 그친 게 대부분이었다. 절절함은 솎아내고 오로지 감각에만 호소할 수 있어야 '쌔끈한' 댄스 음악으로서 진가를 지닌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을 최대한 가볍게 가져가야 한다. 깃이 되고, 솜털이 되어야 귓가에 속히 침투한다. 아니, 이런 음악은 청각을 자극하기보다는 발끝을 먼저 움직일 수 있어야 일단 호감이 간다. 엄정화의 이번 미니 앨범은 이러한 가벼움을 만족한다. 그러나 동시대 클럽 음악, 일렉트로니카 마니아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고 동공을 팽창케 할 만한, 발끝에서부터 댄스 본능을 느끼게 하는 세련됨과 말초신경을 동하게 하는 특유의 그루브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돔(dome)이나 아레나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디제이들의 플레잉리스트에 들어가 수만 관중을 사로잡기에는 요즘 말로 '포스'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힙합과 일렉트로팝이 골고루 버무려진 본 작품은 큰 구장을 뒤흔들 배경음악은 되지 못해도 자시(子時) 이후 슬슬 열기를 확산해가는 클럽의 그것이 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단순한 선율의 반복, 자극적인 보컬 변형 기술, 또는 함께 밤을 즐길 사람을 찾는다거나 춤이나 춰보자는 식의 본능적 욕구에 기반을 둔 노랫말로 댄스곡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 다른 건 몰라도 흥겨움 하나만큼은 흡수 가능할 듯하다.
특별한 유려함은 선명하게 감지되지 않지만 여섯 곡의 노래는 정육면체를 이룬 듯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구성을 보인다. 타이틀곡 'D.I.S.C.O'는 캐나다 일렉트로니카 듀오 크로미오(Chromeo)의 'You're so gangsta', 스웨덴의 힙합 뮤지션 아담 텐스타(Adam Tensta)의 'My cool'처럼 코러스 파트 보컬에 분절을 두어 바운스감을 확보, 통통 튀는 구조로 댄서블한 분위기를 살린다. 또한, 랩과 브리지의 앞뒤 비트에 변화를 줌으로써 하강, 상승하는 느낌을 분명하게 나눠 탄력적인 흐름을 보인다. '오늘 이 밤이 다 가기 전에'라는 후렴구 노랫말이 '초대'를 오버랩하게 만드는 'Party', 어둡고 묵직한 기운을 내는 'Kiss me', 도발적이고 속도감 있는 프로그래밍이 돋보이는 '흔들어' 같은 노래들도 신스 사운드와 업 템포로 무장하여 쾌활한 음을 그린다. 오토튠 이펙트, 보코더는 곳곳에서 자주 튀어나와 부담스럽지만, 청취 욕구를 크게 저하시킬 정도는 아니다.
전자 음악을 새롭게 자기 종목으로 두며 지누, W(Where The Story Ends), 달파란, 프랙탈(Fractal) 등과 작업했던 지난 두 앨범 < Self Control >(2004), < Prestige >(2006)처럼 그쪽 장르 전문가들과 손잡았다면 깔끔하게 정제된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일 수 있었겠지만, 엄정화는 다수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소리를 내고자 했다. YG 엔터테인먼트의 음악가들을 간택한 것도 '쌔끈함'을 담보하지는 못해도 주류에서 그들이 많은 이의 호응을 사는 '가벼운' 댄스 음악을 잘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경량화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선보이는 것 또한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뮤지션의 노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스타일에 익숙한 이가 많을 요즘에 자신만의 독특하고 적극적인 표현을 구축하지 못한 부분은 여전히 아쉽게 느껴진다.
-수록곡-
1. Kiss me (feat. YMGA)
2. DJ (feat. CL)
3. D.I.S.C.O (feat. TOP) [추천]
4. Party (feat. G-Dragon) [추천]
5. 흔들어 (feat. Perry)
6. Celeb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