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넴(Eminem)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명하게 갈려있다. 지지층은 허울 좋은 유명인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독설 퍼레이드에 열광했다. 반면에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더하여 심의 딱지에 걸맞은 음담패설에 넌더리가 난 거부세력은 꼴도 보기 싫은 미꾸라지 한 마리를 보듯이 경멸했다. 호불호를 떠나서 그의 전달력과 이에 따른 파급력이 강력했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히스테릭한 랩 융단 폭격은 이라크 수용 포로를 고문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놀라운 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살기 가득한 래핑은 < Recovery >에서 매우 잔잔해졌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에서 이제는 남도 돌아볼 줄 알게 된 것인가. 첫 싱글 'Not afraid'는 자전적 영화 < 8 마일 >(8 Mile)의 주제곡이었던 'Lose yourself'에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팬들에게 때 아닌 연대의식을 강조하며 자긍심을 고취하는 메시지가 다소 당황스럽지만 이 또한 앨범 타이틀인 < Recovery >를 자아치유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아귀가 맞는다.
그렇다고 에미넴이 한 마리 순한 양이 되어 돌아온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력을 증명 혹은 과시하는 대목에서 주요 전술로 사용한 윽박지르기는 이번 앨범에서도 유효하다. 익살과 독설을 가미한 촌철살인의 래핑이 다소 무뎌진 인상을 주는 감이 없지 않지만 'Almost famous'나, 릴 웨인(Lil Wayne)과 함께한 'No love' 같은 하드코어 트랙은 여전히 위압감을 살포한다.
총괄 프로듀서는 이번에도 역시 닥터 드레(Dr. Dre)가 맡았지만, 전체적인 큰 틀만 잡는 역할을 했을 공산이 크다. 개별 트랙마다 디제이 카릴(DJ Khalil)이나 저스트 블레이즈(Just Blaze)등 프로듀서 진영을 대폭 물갈이했기 때문이다. 이전 작들과 선명하게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 연유에는 프로듀서 진의 교체가 상당 부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둔탁한 바운스 감각에 록 감성에 맞닿아있는 풍성한 리듬 세션이 첨가되어 청취 장벽을 낮춘 효과를 냈다.
이러한 의도는 적중하여 차트에서도 호성적을 획득했다. < Recovery >는 어느덧 7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데 도달한 베테랑의 노련함마저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다. 선동적인 메시지를 통해 기존 팬을 방어하면서, 작전상의 음악적 전환으로 부동층까지 포섭하는 영리함을 추구했다. 야전을 함께 누빈 에미넴과 멘토 닥터 드레의 융합이 창출하는 파괴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다.
-수록곡-
1. Cold wind blows
2. Talkin' 2 myself (Feat. Kobe)
3. On fire
4. Won't back down (Feat. Pink) [추천]
05. W.t.p
06. Going through changes
07. Not afraid
08. Seduction
09. No love (Feat. Lil Wayne)
10. Space bound
11. Cinderella man
12. 25 to life
13. So bad
14. Almost famous
15. Love the way you lie (Feat. Rihanna) [추천]
16. You're never over
17. Untitl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