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유명한 백인 래퍼”, “2000년대 빌보드를 지배한 사나이” 등의 수식어는 에미넴을 하나의 상징으로 연출했다. 이 신화 속 인물은 허나 신비주의를 거부한 채 소통을 지속했고 거의 해마다 싱글이 나왔다. 앨범 발매도 꾸준했다. 주스 월드와의 ‘Godzilla’가 히트한 2020년 음반 < Music To Be Murdered By >과 컴필레이션 < Curatin Call 2 >처럼 휴지기 없는 생산 덕에 <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 >에 쉰하나 래퍼의 노쇠화 기미가 없다.
빌보드를 비롯한 각국의 앨범 차트 1위를 휩쓸며 다시금 차트의 제왕임을 확인한 에미넴은 늘 그렇듯 현현(顯現)과 현신(現身)에 집중한다. 대중주의와 상업 노선의 영합에 늘 미디어와 퍼블릭 앞 우뚝 서길 원했던 그에게 <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 >는 블랙 코미디 화법과 명확하고 발성이 탄탄한 랩 스킬까지 그 약속을 지켜줄 미덕을 보유했다.
상기한 이점에 빌리 스콰이어의 ‘My kinda lover’를 삽입한 ‘Shadyxv’와 에어로스미스의 명작 ‘Dream on’을 재해석한 ‘Sing for the moment’ 등 록 뮤직과의 인연이 빌보드 핫100 2위의 싱글차트 히트곡 ‘Houdini’에서 재현되었다. 아메리칸 록의 기둥 스티브 밀러 밴드의 빌보드 넘버원 ‘Abracadabra’를 차용한 이 곡은 랩 하드웨어와 팝적인 감수성, 풍자적 성격 등 에미넴의 주요 특질이 함축된 이 곡과 ‘Antichrist’와 ‘Fuel’의 속사포 랩이 건재함을 알렸다.
후배 래퍼의 조력이 어느 정도의 경향성을 확보했다. 상기한 ‘Fuel’엔 두 차례 내한 공연을 펼친 워드 플레이 재주꾼 제이아이디가 참여했고, 필리핀 출신 래퍼 에즈 밀리가 ‘Head honcho’에 라틴 색채를 가미했다. 트렌디한 사운드를 가미한 앨범 내 협업 트랙은 독고다이 이미지와 상이한 개방주의와 포용성을 모색했다.
이슈메이커의 이빨을 드러냈다. 캔슬컬쳐를 꼬집은 ‘Trouble’이 틱톡에서 Z세대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기도 했다. 늘 아슬아슬 줄타기해 왔던 에미넴이기에 그 자체로 놀랄 일은 아니나 온라인 포럼이 활성화된 현시대엔 가사 수위에
관한 각종 담론이 활발하다. 낙마로 전신마비가 된 1978년
영화 < 슈퍼맨 >의 히어로 크리스토퍼 리브를
다시금 조롱한 ‘Brand new dance’는 수위 조절 실패 뿐만 아니라 더 이상 그의 수법이 신선하지
않음을 입증한 악재(惡材)였다.
컨셉트 앨범이란 거창한 의제를 제시했으나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큰 틀에서의 대주제 이외에 일관성과 통일성이 부재한다. 리브를 조소하다 친딸 헤일리 향한 애정을 나타내는 들쭉날쭉 스토리텔링과 형용사적 의미에서의 "하드코어" 이상의 깊이감을 품지 못하는 사운드는 개별곡 모음집같다. 중간중간 분포한 스킷 트랙만이 형식성을 가져다줬다.
랩뮤직 대들보의 신보 < The Death Of Slim Shady (Coup De Grâce) >는 양날 검이다. 다중 자아의 긴장감을 다룬 컨셉트 앨범은 느슨한 유기성과 협소한 성찰을 내포하고, 비교적 관습적이며 일률적인 작법은 변화 혹은 쇄신과 거리 멀다. 카리스마로 불식해왔던 논쟁적 요소가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다. 한편 전성기에서 벗어난 지금에도 준수한 랩과 특유의 고약함, 대중성 넘치는 편곡·프로듀싱은 에미넴만이 선사할 수 있는 결과물이며 이번에도 대중의 응답을 끌어냈다. 하나의 래퍼 혹은 뮤지션을 넘어선 아이콘이 작품의 질을 떠나 이렇게 생생한 물리적 실재(實在)로 다가올 수 있음이 놀랍다.
-수록곡-
1. Renaissance
2. Habits
3. Trouble
4. Brand new dance
5. Evil
6. All you got (skit)
7. Lucifer
8. Antichrist
9. Fuel [추천]
10. Road rage
11. Houdini [추천]
12. Breaking news (skit)
13. Guilty conscience 2
14. Head honcho [추천]
15. Temporary
16. Bad one
17. Tobey [추천]
18. Guess who's back (skit)
19. Somebody save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