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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ion 2
가리온(Garion)
2010

by 홍혁의

2010.12.01

가리온이라는 이름이 생소한 이들은 크게 두 경우다. 힙합이 아직까지 낯설게 느껴지거나, 좋다하더라도 첫 만남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나. 한국 힙합 신에서 가리온이 함의하는 영향력의 무게는 실로 엄준하다. 두 멤버인 엠씨 메타(MC Meta)와 나찰은 어둡고 습한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부터 한국 힙합의 태동을 묵묵히 일궈냈다. 지하에서 함께 부대끼며 랩을 내뱉던 이들이 하나둘씩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며 융기할 때도, 두 장인은 순간의 영화를 위해 본연을 변이시키지 않으며 독자적인 노선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았다.

단지 흠이라고 한다면 작품 활동에 너무 인색했다는 점. 1990년대 후반에 제이유(J.U)를 포함하여 2MC & 1DJ 시스템으로 발표했던 곡들을 취합한 데뷔 앨범이 2004년에야 빛을 봤을 정도니 말이다. 사실상 새천년에 들어서는 2005년 발표한 싱글 앨범이 유일한 결과물이었기에 5년의 기다림 끝에 베일을 벗은 두 번째 앨범이 환호를 받은 것은 일면 당연하다.

드럼이 비트의 주된 골격이었고, 리듬 파트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초기작들이 현재의 트렌드에서는 흥미를 주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총 16명의 프로듀서가 비트를 제공한 진형에서 살펴지듯이 이번 앨범의 특징은 다양성의 공존이다. 각 트랙의 비트는 미국에서(S-1), 일본에서(DJ Mitsu the beatz), 뉴질랜드에서(XPERIENCED1, JWE) 한 앨범으로 집결했다. 물론 국내 힙합 신에서 잔뼈가 굵은 더 콰이엇(The Quiett), 킵루츠(Keeproots),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프라이머리(Primary) 등도 전설의 귀환 길에 도움을 보탰다.

프로듀서의 다채로움만큼이나 개별적인 콘셉트 구조는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긴박한 추격전을 유쾌하게 풀어쓴 '본전치기'와, 숙취에 힘들어하며 끊어진 필름을 복원시키려는 의식의 흐름을 서술한 '술 푼 사슴' 등은 스토리텔링의 성격이 다분하다. 더하여 굳이 탄탄한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지만 정교하게 배치된 미장센 효과가 인상적인 '복마전'은 살기 가득한 야전의 공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한 사례다.

초심자들까지 포섭할 수 있는 멜로디 감각을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또 하나의 성과다. 싱글 발표 시에도 의외의 밝은 코러스가 인상적이었던 '그 날 이후'가 재차 삽입되었고, 엠씨 메타가 직접 후렴구를 부르기 위해 목을 가다듬은 '생명수'도 무거움과는 거리가 있다. '영순위'에서는 밀리 잭슨(Millie Jackson)이 불렀던 싸이키델릭 소울 성향의 'Child of god'을 샘플링하여 한층 마초적인 남성다움이 강화된 결과를 빚어냈다.

두 번째 정규 앨범에서 사운드의 다채로움이 귀를 만족시키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가사 작법의 진중함이다. 그간 가리온이 가치를 획득한 데에는 한국어 랩의 기반을 축조한 공덕이 지대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표현력의 외연을 넓히며 한국어 랩의 가능성을 현실화한 선구자였다. 신중하지만 적합한 어휘 선택과, 감성의 남용을 경계하는 가사를 구사하는 엠씨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흔하지 않다. 단지 힙합 신에 오랫동안 터를 잡았다고 해서 존경을 받지 않는다. 계급장에 안주하지 않는 치열한 자기진화가 존중을 가져온다.

-수록곡-
1. 다만, 가리온
2. 약속의 장소
3. 산다는 게 (feat. 선미)
4. 복마전 [추천]
5. 객석 (feat. 샛별)
6. 수라의 노래
7. 본전치기
8. 영순위 (feat. 넋업샨) [추천]
9. 판게아 (feat. P-TYPE)
10. 술 푼 사슴
11. 그 날 이후 (feat. 채영)
12. 나는 소망한다
13. 불가사리
14. 생명수 [추천]
15. 소리를 더 크게 (feat. SEAN2SLOW) [추천]
16. 12월 16일 (feat. LUCY)
17.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