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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Effect
(Rain)
2014

by 한동윤

2014.01.01

피로감이 골육에 사무친다. 두 명이 듣다가 넷이 지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 Rain Effect >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해 노곤을 증정한다. 과한 바이브레이션과 애드리브를 연발하는 겉멋에 젖은 싱잉, 유연함이나 슬기라곤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평면적인 래핑, 맥락은 배제한 채 반복에만 전념하는 가사 등 일련의 요소들이 화합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비는 진정한 마성의 남자다.

고단함을 안기는 성분들의 원대한 집약은 'La song'이 대표적이다. 버스(verse)에서 화자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를 한 뒤 곧바로 '라라라'를 반복한다. 랩으로 다시 한 번 자신을 설명하지만 자랑이라는 포인트 외에는 두서가 없다. 그리고는 또다시 줄곧 '라라라'다. 억지로 각인을 시키려는 것처럼 그냥 계속해서 '라라라'만 때려 박는다. 여기에 후렴부터 뒤에 깔리는 추임새, 구호는 알짱거리며 중독을 보조한다. 실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애드리브가 더 많은 비 노래의 우스꽝스러운 특징이 오랜만에 공공연하게 펼쳐진다. 노래 자체는 흥겨움을 의도하지만 무의미한 음절로 가득 찬 무의미한 가사, 체계가 없는 래핑 때문에 즐거울 수가 없다.

공동 타이틀곡 '30 sexy'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후렴을 착안한 듯 음절을 부풀리며 반복에 매진한다. 또한 내레이션으로 메우고는 있지만 후주는 비생산적인데다가 불필요하게 길어서 몹시 지루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흉한 가성은 고달픔을 극대화한다. 영겁 같은 인고의 3분 33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어디 가요. 오빠'는 그 어떤 감동 없이 거듭의 거듭, 중복의 중복으로 연신 호객의 정경과 유흥의 자기 기준만 그린다. 게다가 일차원적인 라임으로 충격을 전하기만 했지 비는 여기에서 현아라는 캐릭터가 지닌 관능에만 의존할 뿐이다. 가수로서는 조금의 존재감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차에 타 봐'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에나 썼을 법한 유치한 내용으로 소름을 돋게 하고 'Superman'은 억지스러운 말 맞춤, 장난과 진지함이 뒤섞이지 못하고 따로 겉도는 보컬 탓에 지겹기만 하다. 'Dear mama don't cry'는 그칠 줄 모르고 연속되는 동일한 문장이 징글징글하게 느껴진다. 도처가 피로물질이다.

굉장한 '레인 효과'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비는 모처럼 낸 음반으로 가공할 만한 피로감을 들게 한다. 작금의 트렌드와 자신의 장기를 보여 줄 수 있는 댄서블한 분위기에만 혈안이 돼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장렬히 놓쳤다. 본인은 잘한다고 믿고 있을지 몰라도 답답하고 뻔한 가창도 불편한 기운에 한몫했다. 이곳에서 비는 음악 감상을 노역으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일을 달성했다. 진정한 마성의 사나이임을 증명했다.

-수록곡-
1. Rain effect (작사: / 작곡: 배진렬, 정지훈)
2. 30 sexy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3. La song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4. 어디 가요. 오빠 (feat. 현아)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5.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추천]
6. 차에 타봐 (정지훈 / 배진렬, 정우영, 정지훈)
7. Superman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황혜경)
8. 알아버렸어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9. Dear mama don't cry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10. 30 sexy (East4A Deeptech Mix) (정지훈 / 배진렬, 정지훈)
한동윤(bionics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