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일생과 음악적 족적을 갈무리한 앨범이다. 개인과 음악, 그리고 시대가 모두 녹아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질곡을 넘어 더 넓은 지평을 갖는다. 딛고 일어선 자의 감회는 앨범 소개글에서도 묻어 나온다. “1991년 여름. 나는 마흔이 되었다. ‘아침이슬’ 이후 20년째이다.”
1970년대 포크(Folk)의 위상은 대단했다. 선두주자였던 그는 시대정신 그 자체였던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하얀 목련’, ‘한계령’ 등을 히트시키며 그 시절을 풍미했다. 10년이 지나 포크의 위엄은 한 풀 수그러졌고, 개인적 부침이 겹쳐 휴지기를 가졌다. 그 후 4년만이다. 20주년을 기념함과 동시에 심신을 추슬러 내놓은 걸출한 재기작이다. 전곡을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완성해 포크 미니멀리즘 탄생의 신호탄을 알리기도 했다.
정점의 찬란함 뒤로 쌉싸름한 여운이 남았다. 창법도 이에 맞춰 변했다. 머리 위로 냉수를 쏟아 붓는 것처럼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세월에 마모되어 모서리가 조금 둥글어졌고, 멜로디 라인에서도 음폭의 변화를 좁혀 극적인 연출 대신 자기서사에 집중했다. 여기에 중반이라는 나이가 선사하는 연륜이 깊이를 더한다. 가사는 회고조가 대다수이나 태도에서 묻어나오는 관록이 뒤돌아보는 일을 초라하지 않게 만든다.
소르(F.Sor)의 연습곡에 가사를 붙인 ‘나무와 아이’를 제외한 7곡 전부가 '어떤날' 출신 이병우의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가을하늘’, ‘11월 그 저녁에’ 작사, 모든 곡의 편곡과 연주를 담당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병우의 간결한 편곡, 담백한 기타 연주가 변화한 음악 스타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저 바람은 어디서?’는 이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곡이다. 가사에 따르면 ‘왜 사는지 알고 싶어서’ 떠난 머나먼 길의 해답은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봤을’ 때 보인다. 이 고백 위로 개인사가 쉽게 겹쳐진다. 쉼 속에서 여유와 관조를 얻었고 이는 곧 성숙의 원천이 됐다. ‘인생 참 어려운 노래여라’는 가사로 인간 본연의 고뇌를 담은 ‘11월 그 저녁에’, 삶의 지향점을 노래한 ‘나무와 아이’도 유사한 맥락에 놓인다.
관조는 쓸쓸함으로 짙어지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곡으로 열매 맺는다. 김건모, 윤민수, 자우림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의 단골 리메이크 곡이며, 이 앨범의 정수(精髓)다. 가사와 선율의 절묘한 조합이 빼어나다. 가사는 슬픔을 가감 없이 담았고, 선율은 그것을 곱씹는다. 반복되는 음정 패턴이 감정을 극단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완충제 역할을 했다. 서늘한 처연함을 담고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절제미가 독보적이다. 치우치지 않는 덤덤함은 곡의 정서를 사랑에 관한 개인적 소회를 넘어 고독이라는 보편적인 위치로 나아가게 했다.
-수록곡-
1. 그해 겨울
2. 그리운 친구에게
3. 가을 아침 [추천]
4. 저 바람은 어디서? [추천]
5. 11월 그 저녁에 [추천]
6. 나무와 아이 [추천]
7.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추천]
8. 잠들기 바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