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한다. 온갖 영화의 메타포부터 일상적인 욕설까지 그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고뇌에 휩싸였던 무신론자(‘Unbelievers’) 뱀파이어 위켄드는 누군가는 부정하고, 어떤 이는 경배하며, 혹자는 두려워할 고독한 절대자의 눈을 빌려 세계를 바라본다. 천국의 옥좌 대신 가장 낮은 이곳 땅에서.
월드뮤직에 넓게 다가간 2019년 < Father Of The Bride >가 사실상 프론트맨 에즈라 코에닉의 솔로 스핀오프였다면 5년 만의 복귀작 < Only God Was Above Us >는 < Vampire Weekend >와 < Contra >, < Modern Vampires Of The City >로 이어지는 밴드의 원류를 계승한다. 삭막한 뉴욕의 잿빛 풍경을 가져온 아트워크와 음악의 핵심 기틀이었던 챔버 팝 구성의 부활이 그 증거다. 직접적으로 과거를 인용하기도 한다. ‘Connect’에 삽입된 ‘Mansard roof’의 드럼 패턴과 ‘Pravda’의 아프로 리듬, ‘Step’의 피아노 반주를 닮은 ‘Hope’ 등 여러 이스터에그가 숨어있다.
분명한 정서 차이 덕분에 앨범은 단순 회고 이상이 된다. ‘Walcott’의 날쌘 키보드가 떠오르는 ‘Gen-X cops’의 기타 리프는 명랑함 대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철의 차가움을 머금었고, 습한 트립합 퍼커션이 들리는 ‘The surfer’는 전례 없이 추적거린다. 가사도 마찬가지. 잔인한 승자만이 남는 역사를 가리켜 ‘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면 무엇이 고전으로 남겠나’고 묻는 ‘Classical’은 과거의 탐구정신보다 비관적인 미래 예측에 가깝다. 10년이 넘는 세월 끝에 뉴욕으로 돌아온 탕아를 반기는 삶의 불확실성은 이제 결코 낭만적일 수 없다.
불안 앞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유롭다. 정해진 방향 없이 움직이는 ‘Classical’의 색소폰과 ‘Connect’의 재즈 스타일 아웃트로, 그리고 수시로 포효와도 같이 분출되는 사운드의 덩어리는 < Only God Was Above Us >를 뱀파이어 위켄드의 커리어 중 제일 감정적인 작품으로 만든다. 돌발적이고 재기발랄한 면모마저 치밀하게 계산했던 지난날의 이성 그리고 합리성과의 작별이다.
그럼에도 작품에 맴도는 온기는 이를 허무주의로 결론지을 수 없도록 한다. 단서는 재밌게도 ‘애쓸 필요 없다’고 쓸쓸히 말하는 ‘Capricorn’에 있다. 연말에 태어나 한 해를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염소자리를 달래는 가사는 타인과 스스로를 함께 위로하듯 들리는데, ‘신이 당신 곁에 있었을 때 세상은 달라 보였다’는 문장은 그 대상이자 주인공을 (마치 이종용의 ‘겨울아이’처럼) 12월 25일을 생일로 기념하는 그리스도로 읽게 한다. ‘Ya hey’에서 증오를 버티며 살아간 야훼를 향해 ‘또 누가 그리 살아갈 수 있겠냐’며 그의 이름을 부르짖던 청년이 어느덧 같은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예수의 시선을 빌리는 에즈라 코에닉의 태도는 그러나 1996년 브릿 어워드의 마이클 잭슨이나 오늘날 비욘세의 장엄한 자기 신격화와는 다르다. 그는 누군가 조용히 말한 좌절감의 욕설을 홀로 귀에 주워 담는(‘Ice cream piano’) 동시에 계급 투쟁의 약자 편에 선 채 기득권으로 하여금 모두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일깨우는(‘Prep-school gangsters’) 사람이다. 앨범에 드문드문 새겨진 이러한 알레고리는 하늘 위 아득한 성자가 되기 이전 어떤 목수가 걸었을 평범하고 소박한 길에 터를 잡는다.
그렇게 음반은 모두를 포용하고 껴안는다. 1990년대풍 힙합 비트로 밴드 활동 전 래퍼를 꿈꿨던 에즈라 코에닉의 치기 어린 과거까지 품은 ‘Mary Boone’은 유명 아트 딜러이자 탈세 혐의로 수감되었던 매리 분을 기성세대의 상징으로 삼아, 거리로 나설 지상의 어린 양들에게 부디 빛을 드리워달라고 천상의 가스펠과 함께 간청한다. ‘모든 세대가 각자의 용서를 빈다’는 ‘Gen-X cops’의 가사처럼 권력 싸움의 허무함을 깨닫고 엎드린 어른의 반성이다. 너무나 강한 적을 마주본 상황에서 ‘그저 흘려보내’기를 당부하는 마지막 ‘Hope’는 그래서 패배 선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위해 자기 자신마저 붕괴해야 함을 아는 자의 이타적 희생이라 할 수 있다.
‘Capricorn’의 뮤직비디오에서 모든 소음이 걷힌 후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만이 남는 순간 카메라는 공간을 이동한다. 세 멤버가 모인 그곳은 학교 도서관 혹은 찬송가를 부르짖는 예배당 같기도 하다. 종교가 더 이상 지식의 동의어일 수 없는 시대이지만 뱀파이어 위켄드는 태초의 숭고한 가치만은 끝까지 간직한다. 앨범 제목은 사실 사진 속 항공기 사고를 일컫는 신문 헤드라인으로부터 따왔을 뿐 메시아의 실재 유무는 중요치 않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 앞에서 신은 비로소 미련 없이 과거 시제가 되어 사라진다.
-수록곡-
1. Ice cream piano [추천]
2. Classical [추천]
3. Capricorn [추천]
4. Connect [추천]
5. Prep-school gangsters
6. The surfer
7. Gen-X cops [추천]
8. Mary Boone [추천]
9. Pravda
10. Hope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