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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2010

by 한성현

2025.01.19

이즘이 비정기적으로 미처 리뷰하지 못했던 작품을 되짚어봅니다. 이번 리뷰는 이즘에서 '2010년 올해의 팝 앨범'으로 선정한 뱀파이어 위켄드의 < Contra >입니다.

컬럼비아 대학교 출신 네 청년이 만든 아프로 뮤직. 뱀파이어 위켄드가 2008년 발표한 데뷔작 < Vampire Weekend >는 키워드만으로 인디 힙스터 세력의 화두에 오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폴 사이먼의 < Graceland >와 약 20년 터울을 둔 아프로팝 후배 앨범에 평단은 찬사를 퍼부었고 상업적으로도 미국 내에서만 100만 장 이상을 판매하여 플래티넘 레코드 인증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되지 않아 발표한 소포모어 < Contra >는 이들이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인디 밴드 라인업의 일원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본래의 매력을 유지하되 약간의 변주를 곁들여야 하는 것이 후속작의 고충이다.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업이 서둘러 진행되었다고 한 만큼 제작에 있어서 부침이 적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정작 앨범을 듣고 있으면 조급함이나 < Vampire Weekend >의 성공을 이으려는 강박이 특별히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느낄 수 있는 것은 더 많고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들려줄 수 있겠다는 의기양양한 자신감이다.

일단 형식적인 테두리가 넓어졌다. 아프로 리듬 외에 스카(ska)를 차용한 ‘Holiday’, 거의 랩에 가까운 ‘California English’, 데뷔 앨범에서는 상상도 못 했을 신스팝 ‘Giving up the gun’ 등 장르적 수용성을 대폭 늘렸다. EDM 드롭을 관악기로 치환한 레이브 뮤직 ‘Run’처럼 혼합적 재해석도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프로덕션이 깔끔해졌지만 프로듀서는 여전히 멤버 로스탐 바트망글리가 맡았다. 앨범에서 보여준 뛰어난 사운드 메이킹 능력은 그가 훗날 여러 팝스타의 프로듀서로 활약할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하고 있었다.

뱀파이어 위켄드의 핵심 중 하나는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단어를 발췌해 수수께끼처럼 조합한 언어다. ‘배운 자’들의 농담 따먹기라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그런 부류 중 가장 허세가 없는 편이었다. ‘Oxford comma’만 하더라도 첫 문장이 “누가 그런 쉼표 표기법 따위를 신경 써?”였으니까. 후속작에서도 프론트맨 에즈라 코에닉은 영문학 전공자 아니랄까 봐 캘리포니아의 말버릇을 소재로 한 ‘California English’를 수록했지만, ‘앨빈과 슈퍼밴드’ 다람쥐 캐릭터들이 랩을 하듯 오토튠을 묻혀 언어를 쏘아대는 곡은 그 자체로도 재밌다. 독해의 즐거움은 보너스일 뿐 억지로 머리를 싸맬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앨범의 일부 트랙은 일종의 셀프 패러디로도 볼 수 있겠다. 오르차타 음료와 바라클라바로 각운을 맞춘 ‘Horchata’, 인상주의적으로 뉴욕 도심 빌딩촌을 묘사하는 ‘White sky’는 뱀파이어 위켄드의 노랫말이 복잡하다는 스테레오타입을 직접 연기하며 불만의 목소리를 해맑은 표정으로 약 올린다. 물론 ‘Cousins’를 듣고 단번에 무슨 내용인지 꿰뚫어 보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이들 나름대로 난폭하게 내려치는 드럼과 펑크의 난리법석을 모사하는 기타는 사실 그런 건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다수를 만족시키면서 화법을 굽히지 않는 영리한, 혹은 약삭빠른 면모다.

뱀파이어 위켄드는 클래시를 앨범의 모토로 지칭한 밴드치고는 모범생 같았고, 월드뮤직에 대한 애착을 닮긴 했으나 토킹 헤즈의 후손이라기에는 순진해 보였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신선함을 불어넣은 것은 ‘반대로’를 뜻하는 앨범 제목처럼 이질적인 성질이 만나 이루는 기묘한 조화였다. 고상한 표정으로 레코드샵 진열장에서 꺼내면서도 페스티벌에서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밴드. 기발한 상상을 대중적 작법으로 풀어낸 < Contra >는 인디 음반으로는 열두 번째로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르며 < Modern Vampires Of The City >로 이어지는 장대한 트릴로지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수록곡-
1. Horchata [추천]
2. White sky [추천]
3. Holiday [추천]
4. California English
5. Taxi cab
6. Run [추천]
7. Cousins [추천]
8. Giving up the gun [추천]
9. Diplomat’s son
10. I think ur a contra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