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로 깜짝 복귀한 퍼렐 윌리엄스의 품새가 독특하다. 일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음원 플랫폼 내 정보나 선공개 싱글, 언론 홍보나 뮤직비디오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웹페이지 주소(blackyachtrock.com)와 동봉된 무료 음원만이 유일한 단서다. 여기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를 포함한 핵심 관계자의 증언이 이어져 이 곡 모음집이 퍼렐의 정규작이라는 불완전한 추론에 이른 것이다. 더 이상의 정보나 알 길이 없으니 결국 음악에 남겨진 흔적을 탐문한다.
첫 박자를 네 번 반복하는 인트로와 현란한 가성에서 익숙한 향기를 풍기나 트래비스 스캇이나 마일리 사이러스와 합을 맞췄던 최근과 다른 낯선 사운드다. 굳이 구분짓자면 넵튠스보다는 록과 친밀하게 교류했던 엔이알디(N.E.R.D.)에 가깝고, 주파수를 1980년대에 맞추며 보편성을 확보했다. 소프트 록부터 신스 팝을 자유로이 휘젓고 특유의 가창과 흑인 음악을 얹는 방식, 그 결과는 듣기 쉬운 편안함과 'Come on Donna'와 같은 무난한 트랙으로 나타난다.
흔적을 쫓는 이를 방해라도 하는 걸까. 여유로운 해안가가 연상되는 요트 록 등 친근한 레트로를 몇 번 칠해 교묘하게 위장했으나 그 형식과 조합에 수긍하기는 어렵다. 장르 간 화학 결합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이질감을 강하게 내뿜고, 유려한 반주와 달리 목소리에 넣은 과한 반향 효과와 기계적이고 일률적인 화음 중창이 뿜어내는 부담스러움에 전체 분위기가 잠식당했다. 첨단 기술을 통한 음악의 변형이 만연한 요즘 시대, 깔끔하게 매만져졌으나 어딘가 어색하고 그 출처조차 불분명한 이 곡들의 진짜 정체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언어를 진지하게 곱씹고 나면 미궁은 더 깊어진다. 그의 고향인 버지니아를 표상하는 부제 '무한한 접근의 도시'를 포함해 해석의 실마리가 될 가사가 모두 의문투성이다. 'Richard Mille'에서는 '시간은 돈, 돈은 곧 시간'이라며 의미 없는 구절을 늘어놓고, 단순히 라임 반복만을 위한 곡 'Dandy lying'에서는 'A lion, she's a dandelion'처럼 실종된 의미를 읊는다. 진지한 사색보다는 긍정 음악과 파티에 강한 캐릭터임을 고려하더라도 이 부자연스러운 단어 나열에 친절한 힌트는 찾아볼 수 없다.
현재까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퍼렐 윌리엄스가 지금까지의 지향과는 다른 음악을 아리송한 출구를 통해 내놓았다. 과거 프린스가 출신지인 미네아폴리스에서 매드 하우스라는 밴드를 신비롭게 조직했듯, 퍼렐 역시 고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밴드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가설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버지니아에서 나고 자란 그를 그리기 위해 미셸 공드리가 메가폰을 잡은 퍼렐 윌리엄스 전기 영화가 개봉하면 본격적인 재수사가 시작될 예정. 그때까지 이 블랙 요트 록은 미제 사건이다.
- 수록곡 -
1. Richard Mille
2. Dandy lying
3. Just for fun
4. Come on Donna [추천]
5. Caged bird free
6. Ball
7. 11:11 [추천]
8. Who needs rest
9. Cheryl
10. Going back to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