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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ury Flow
더 콰이엇(The Quiett)
2024

by 손민현

2024.07.28

일반적인 대중음악과 달리 유독 동시대성과 관계성이 높은 힙합 음반은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넘어 전체 신과 긴밀히 관계를 맺는다. 음악을 넘어 문화와 삶의 방식에 뿌리를 둔 상호작용의 음악인 까닭이다. 그렇게 속한 공동체나 동종 업계에서의 위치, 가치관의 진정성과 솔직함이 앨범의 고결성에 긴밀하게 연결되며 자타 공인을 받은 수작의 파장은 업계 전체에 깊고 넓게 미친다. 각각 앨범 하나만으로 한국 힙합의 축을 크게 움직인 빈지노와 이센스의 재림이 불과 1년 전의 사례다.


작년을 뒤흔든 독보적인 아이콘과 최고의 랩 기술자. 두 거물과 같은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입지는 사뭇 다르다. 개인과 집단으로서의 차이다. 그는 사춘기의 힙합을, 그리고 미디어의 물결을 타고 힙합의 대중화와 판도 변화를 진두지휘한 거함의 선장이었으며 엘리트 선원 모집에도 늘 일선이었다. 스스로에게는 20년간의 항해일지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새롭게 바다에 뛰어들 이들에게는 필독서인 것이다. 자기 의도와 관계없이 이번 신보 역시 큰 담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묵직한 주제를 함축한 짧은 제목이다. 용광로 같은 소울 컴퍼니의 열정과 일리네어 레코즈의 황금 더미, 그를 대표하는 두 개의 과거가 섞여 현재는 호화로운 금빛 유체로 흐른다. 추억 회상의 인트로를 이어 그 영광을 좇는 후배들을 등에 지면서도 지금의 사적인 고민까지 담은 그의 역사. 기록의 탄탄한 골자는 우리가 2000년대 초반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친숙한 붐뱁 사운드가 초장부터 잡는다. 프리마 비스타의 연주와 진보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King is back’, ‘검은 행복’과 닮은 ‘Look inside’, 적자(嫡子) 창모와 나란히 선 ‘Ugrs’는 이후 탐독에 앞서 행해야 할 근본 준수의 선서와 같다. 


매번 같은 것만 반복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굳은 기반 외에도 너른 장르 포용력을 재차 증명한다. 언더 그라운드의 숨은 강자 미셸 양과 함께 한 ‘I won’t rmx’나 뉴스쿨의 선두 주자 쿠기가 합세한 ‘Crystal crates’를 보면 중반부를 채운 멜로딕한 곡에도 위화감이 없고, 뚜렷한 발성의 큐엠과 선보인 드럼리스 트랙 ‘Last of us’에서도 랩이 두드러진다. 표제 직역 그대로 고급스러운 플로우에 맞는 본문, 릴러말즈처럼 강한 개성이 침투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특유의 버터 바른 듯한 목소리가 앨범 전반에 고르게 녹아든 덕분이다. 


변천과 약간의 무질서를 엮어주는 요소는 어느 때보다 집중되는 그의 목소리다. 본인의 작품이더라도 랩 실연에서는 자신이 이끄는 사단의 정예병들에게 자리를 내줬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엔 주연이다. ‘한번뿐인 인생’을 살겠다 다짐한 < The Real Me >의 청년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어쩌면 그때는 이루지 못했던 완전한 혼자로의 발돋움이다. 사적인 이야기를 담은 ‘What’s love now’, 삶을 담담히 관조할 뿐인 ‘Usual suspect’ 등 몽글몽글하게 매만진 피아노가 이끄는 끝자락에서는 어떤 목적이나 담론 속 더 콰이엇이 아닌 이야기로서 랩에만 눈길이 간다. 


동시에 개별 트랙에서는 현역 비트 메이커들에게 3분 내외의 자유를 부여하고 본인은 감독의 역할에 충실했다. 장면 간 융화에 집중한 덕분에 두 알앤비 보컬과 꾸린 ‘Ocean view’가 난입하거나, 원곡의 피치를 높여 샘플링한 칩멍크 ‘Someone else’를 결이 비슷한 초반이 아닌 최하단에 배치해도 일관성을 잃지 않는다. 더 콰이엇 2기 일리네어가 마련한 새로운 소재와 판도, 2.5기 앰비션 뮤직이 지향하는 공동 성장과는 다소 다른 3기 데이토나 ‘엔터테인먼트’의 라인업, 여기에 의문을 가졌다면 < Luxury Flow >가 품격 있는 응답이 될 수 있겠다.


두꺼운 양장본, 2024년 개정판, 이 국내 힙합 총론을 덮고 나면 한반도의 힙합이 어디까지 왔는지 엿보인다. 점차 선명해지다 이제 확실해졌다. 비슷한 음악 스타일, 컴필레이션 앨범이나 합동 콘서트 등으로 한 집단의 결속력을 강조하고 모객하던 레이블 시대의 힙합은 서서히 저물고 있다. 핵 개인화 시대에 발맞춘 자연스러운 순응일 수도, 힙합 대중화의 해일이 잦아든 후 맞게 된 각자도생의 판일 수도 있다. 늘 그랬듯이 시류가 어쨌건 그는 변함 없다. 구시대의 종말과 함께 굳건한 자기 서사의 연장을 품격 있게 고한다.


-수록곡-

1. LF intro

2. King is back (Feat. JINBO the SuperFreak) [추천]

3. Look inside [추천]

4. Ugrs (Feat. Paul Blanco & CHANGMO)

5. I won’t rmx (with Michel Yang)

6. Crystal crates (Feat. Coogie) [추천]

7. Mercedes (Feat. Leellamarz & Gist)

8. Selfie (Feat. Los & Street Baby)

9. Last of us (Feat. QM) [추천]

10. What’s love now

11. Visionare

12. 꿈

13. After party (Feat. Leellamarz)

14. Ocean view (Feat. Marv & MELOH) [추천]

15. Usual suspect [추천]

16. Someone else (Bonus Track)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