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즐거움이 필요하다면 당장 < 스탑 메이킹 센스 >

토킹 헤즈(Talking Heads)

by 김태훈

2025.07.25



즐거움이구나. 토킹 헤즈의 음악은 즐겁구나. < 스탑 메이킹 센스 >는 시청각적 즐거움의 연속이구나. 영화관에서 나와 생각을 정리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오로지 '즐거움'이었다. 그것은 필자뿐만 아니라 시사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함께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크게 즐거울 만한 일이 거의 없었던 결핍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더욱 크게 감응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 스탑 메이킹 센스 >는 인생에 권태기가 찾아온 사람들의 메마른 감정에 단비를 내려줄 수 있는 즐거운 영화다.




조나단 드미 감독의 1984년 영화 < 스탑 메이킹 센스 >는 약 90분의 러닝타임 내내 순수한 재미로 가득한 예술의 공간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미국의 4인조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의 공연 실황이다.


당시 토킹 헤즈는 5집 < Speaking In Tongues > 발매 후 싱글 'Burning down the house'를 빌보드 핫100 9위에 올리면서 상업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토킹 헤즈의 팬이었던 조나단 드미는 그들의 역동적인 라이브에 감명받았는데 특히 보컬 데이비드 번의 퍼포먼스에 주목했고 이후 촬영을 제안했다. 그렇게 1983년 12월, 할리우드의 판타지스 극장에서 특별한 콘서트가 나흘간 펼쳐졌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공연 실황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사전 인터뷰나 비하인드 컷이 없다. 심지어 관객의 모습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토킹 헤즈의 무대 그 자체다. 심지어 그 무대도 일반적이지 않다. 그들이 선보이는 퍼포먼스들은 연주, 가사, 카메라 구도, 조명 효과 등 많은 요소가 맞물려 여러 메타포를 남긴다.




시작은 혼자다. 아무것도 설치되지 않은 무대에 홀로 걸어 올라온 데이비드 번은 라디오를 틀고 텅 빈 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Psycho killer'를 부른다. 이후 한 곡씩 끝날 때마다 멤버가 추가되고, 무대가 조립된다. 완전한 결합의 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다양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모든 곡이 저마다 역동적인 개성을 드러낸다. 몸짓을 쉬지 않으며 무대 위를 한 바퀴 크게 돈다던가('Life during wartime'), 명암 대비와 과장된 걸음걸이로 기괴하고도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던가('Swamp'), 따스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스탠드 램프 옆에서 노래한다던가('This must be the place').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머스는 갑자기 개다리춤을 추기도 한다('Genius of love'). 가장 압권은 데이비드 번이 터무니없이 커다란 정장을 입고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다('Girlfriend is better').




영화는 다양한 무대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섬세하게 따라가고 포착한다. 이에 관객들은 그들이 정말 즐거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데이비드 번은 시작부터 다소 들뜬 모습이고 티나 웨이머스도 공연 내내 미소를 잃지 않는다. 특히 세션으로 참여한 기타리스트 알렉스 위어의 그루비한 연주와 행복한 표정은 무대의 큰 동력원 중 하나다.


작품 속에는 온전히 행복한 직관적 에너지가 있다. 영화 속 행위의 의도를 해석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그들의 음악과 몸짓 자체가 주는 시청각적 재미를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그 긍정적인 에너지는 더욱 거대해진다. 여기에 부정한 감정이 끼어들 틈은 전혀 없다. 


공연 실황 영화는 대체로 출연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라면 볼 이유가 없으나 < 스탑 메이킹 센스 >는 다르다. 토킹 헤즈를 모르면 모를수록 더 좋은 관람 경험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혹시나 토킹 헤즈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관람을 망설이고 있다면, 오히려 그 사전 지식의 부재 덕분에 영화가 주는 행복이 더욱 크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2025년 8월 13일, < 스탑 메이킹 센스 >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극장 개봉한다. 이미 콘서트 영화의 명작이자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 영화를 이미 접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극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관람했을 때 더 빛난다. 마치 정말 콘서트를 보러 간 것처럼, 혹은 타임머신을 타고 토킹 헤즈가 가장 빛났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또는 누군지도 모르는 어느 밴드의 공연을 우연히 감상하러 들어간 것 같은 기분으로 좌석에 앉아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라.


분명하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당신은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서 공연을 감상했던 관객들과 같은 환희를 느꼈다는 사실에 감동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2025년 대한민국의 어느 영화관에서 모든 관객이 동일한 감정을 공유했다는 점에 다시 한번 감동하게 될 것이다.


시네필이든 아니든, 음악 마니아든 아니든, 토킹 헤즈에 대해 잘 알든 모르든, 문제없다. 그런 것들은 애초에 고려 사항도 아니다. 그저 < 스탑 메이킹 센스 >가 주는 귀중한 순간의 환희를 자유롭게 만끽해 보라. 어려울 것 없이, '스탑 메이킹 센스'하라.




사진제공: 루미네

김태훈(blurryday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