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새로운 음반을 발표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비틀스(Beatles)나 그의 그룹 윙스(Wings)의 음악과 비교하게 된다. 이성적으론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감성적으로, 그리고 청각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그의 옛 노래들과 자연히 저울질한다. 바로 이 점이 1980년대 중반 이후 폴 매카트니만의 음악에 몰입하는데 걸림돌이 되어왔다. 1986년에 발표한 'Spies like us' 이후 단 한 곡도 싱글 차트 탑 텐에 올려놓지 못한 것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폴 매카트니는 포스트 그런지와 힙합, 그리고 테크노 시대였던 1997년에 < Flaming Pie >라는 멋진 음반으로 우리들의 섣부른 결정을 부끄럽게 했고 확실한 스타가 부재한 현재의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황 하에서 20번째 앨범 <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를 발표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애정과 애증이 교차하는 존 레논(John Lennon)과 인간적인 동지였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을 잃은 후 링고 스타(Ringo Starr)와 자신만이 '비틀스의 살아있는 역사'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일까? 이 음반은 폴 매카트니의 이미지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밝지 않다. 비틀스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의 소개로 이 음반의 제작을 맡은 나이젤 갓리치(Nigel Godrich)의 터치가 많이 작용한 결과다. 그는 바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 OK Computer >와 < Kid A >를 창조한 어둡고 음침한(?) 인물. 자신의 시각이나 방법론이 다르고 정확히 30살이나 어린 프로듀서의 의견을 수용한 것만 봐도 폴의 순응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존 레논이라면 과연 어땠을지 상상해 보시라!).
윙스 시절을 떠올리는 타이틀 곡 'Fine line'과 초기 로큰롤 풍의 'Promise to you girl', 그리고 비틀스 시절의 명곡 'Blackbird'와 'When I'm sixty four'를 연상시키는 'Jenny wren'과 'English tea'가 명(明)을 제시하는 반면 나머지 곡들은 음(陰)을 드리운다. 'Fine line'과 'Jenny wren', 그리고 프로듀서 나이젤 갓리치가 가장 좋아한다는 'At the mercy'가 이 앨범에 중심을 주는 트랙들.
<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 >는 폴 매카트니가 멜로디를 뽑아내는데 얼마나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아니면 고갈되었을지도). 하지만 그가 새로운 음반을 발표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최소한 이 글을 쓰는 사람에겐 그렇다.
-수록곡-
1. Fine line
2. How kind of you
3. Jenny Wren
4. At the mercy
5. Friends to go
6. English tea
7. Too much rain
8. A certain softness
9. Riding to vanity fair
10. Follow me
11. Promise to you girl
12. This never happened before
13. Any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