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비틀스 해체 직후 솔로 활동 서막을 알린 앨범 < McCartney >를 둘러싸고 대중들이 '너무 나이브하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폴 매카트니는 곧바로 다음 앨범 제작에 착수한다. 호기롭게 출항했지만 항로에는 암초가 널려있었다. 가족애가 증폭되며 부인 린다 매카트니에게 앨범의 주연을 맡기고 싶었지만 그녀의 음악경력은 일천했으며 음색도 듣기 좋은 편은 아니었다. 형제와 같던 비틀스 멤버들과 진흙탕 소송에 휘말린 것도 심신의 피로에 일조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원-맨 밴드 형식으로 제작한 전작과 달리 이번엔 세션에 뮤지션들을 모집해 보다 오밀조밀한 앨범을 만들어낸다.
앨범커버를 살펴보자. 스코틀랜드 반도 끝인 멀 오브 킨타이어(Mull of Kintyre)에 위치한 농장 하이파크 팜(Highpark Farm)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당시 반목 중이던 고집스런 레논을 양에 빗대 힐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뒷면에는 딱정벌레가 성행위중인 모습이 사진으로 담겨 있는데 당시 나머지 비틀스 멤버들이 자신을 '퍽 유'하고 있다고 느끼던 심중이 담겼다고 한다. 앨범 트랙에서도 포문을 알리는 'Too many people'로 자신의 사상을 짜증날 정도로 과도히 설교하던 레논에 펀치를 날렸다. 이어지는 전반부 '3 legs'나 'Dear boy'에도 이러한 에니그마가 조금씩 숨어있어 레논 역시 같은 해 발매된 명반 < Imagine >에서 대응하는 곡 'How do you sleep?'과 뒷면 커버에 돼지머리를 똑같이 붙잡고 있는 사진을 실음으로 응수하는 사건이 있었다.
비틀스 후기 자아 탐구로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1960년대 시대정신을 향후 솔로 활동에도 중심축으로 삼은 레논, 해리슨과는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며 펑키(Funky)한 블루스 리듬을 기저에 위치시키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담아내어 무겁지 않다. 그 와중 음악적 탐구성은 어디가지 않았기에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평소 즐겨 쓰던 가명 폴 라몽(Paul Ramon)과 관련을 지어 재밌는 멜로디를 전후반부에 나눠 수록한 'Ram on'이 대표적 예다. 'I've got a feeling'처럼 두 곡을 한데 엮어 특이한 분위기를 창출한 'Uncle Albert/ Admiral Halsey'는 솔로 활동 최초로 빌보드 싱글 1위를 선사해주었으며 자연스런 이음새를 자랑하는 'Smile away'는 단순한 전개에 맞춰 즉흥적으로 선보이는 보컬이 참 흥겹다.
뒷면에서도 대중음악 최고봉에 오른 장인이 선사하는 즐거움은 어디가지 않는다. 아름다운 전원생활의 즐거움이 그려지는 목가적 분위기 포크 송 'Heart of the country'나 비틀스 화이트 앨범에 수록된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처럼 성적인 메타포어를 다분히 숨겨놓은 'Eat at home'은 너무나도 정겹다. 마이너 코드에 맞춰 꿀꿀대는 돼지처럼 목소리를 한껏 거칠게 비트는 여유를 보인 'Monkberry moon delight'는 우리나라에서 애청곡이 되었고 몽롱한 분위기에서 'Hey jude'처럼 곡 후반부를 부르짖듯 한껏 높인 음으로 마무리하는 'Backseat of my car'는 애비로드 메들리를 떠오르게 한다.
공시적으로 비틀스 앨범에 익숙한 팬들이 듣기에는 너무 단순해 흘려보낼만한 곡인 무작(Muzak)처럼 들릴 수도 있어 발매 직후에는 무시당했으나 통시적으로 매카트니 솔로 최고의 작품이자 '최초의 인디-팝 앨범'이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의 세계에 부대끼길 자청한 신은 이 앨범을 통해 적응기를 마친다.
-수록곡–
1. Too many people
2. 3 Legs
3. Ram on
4. Dear boy
5. Uncle Albert/Admiral Halsey
6. Smile away
7. Heart of the country
8. Monkberry moon delight
9. Eat at home
10. Long haired lady
11. Ram on (reprise)
12. The backseat of my c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