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오늘밤'이 무섭다던 열일곱 소녀 김완선은 이제 '오늘밤'을 기다리는(?) 여인이 되었다. 왜 이리 반가울까? 우선 이 앨범이 자기의 이야기임을 강조한 < Return Seventeen >이란 제목이 내 눈을 고정시켰다. 더 이상 단순한 댄스 가수가 아니라 인생을 경험한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이 베어나는 간판이다.
대만에서의 활동과 사업가, 그리고 음반 제작자로서의 변신, 얼마 전 게맛살처럼 자신의 속살을 드러낸 누드집 발매 등 숫한 번외 게임을 즐긴 그가 결국 되돌아 간 곳은 음악이다. 이 앨범의 궁극적인 도착점이 바로 음악과 자신이 데뷔하던 열일곱의 자신이다. 김완선은 이전에 발표했던 여덟 장의 앨범을 부정하듯 긍정한 < Return Seventeen >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켜 그 안에 들어갔다. '서른의 노래'와 'Seventeen'이 첫 트랙과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것이 그 단적인 예.
하지만 그 두 곡을 제외하곤 남녀간의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노래들이 음반의 전체적인 기류다. 불혹을 앞둔 여성이 말하는 애정은 때론 한걸음 떨어져 관조적으로, 때론 적극적으로 갈구하기도 한다. 이렇듯 새로운 만남과 지난 이별을 추억하는 감성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자신을 노래한 '서른의 노래'와 'Seventeen'이 손무현과 원태연에 의해 만들어진 건 이율배반적이다.
옥구슬 같은 사운드 믹싱이 돋보이는 '서른의 노래'와 어반 리듬 앤 블루스를 들려주는 '모짜르트 듣는 여자', 인디 록 밴드의 노래처럼 자의식을 생생하게 담은 'Seventeen', 어스 윈드 & 파이어(Earth Wind & Fire) 풍의 펑크(funk)를 풀어낸 '정말이지 나는' 등이 아주 좋다.
라틴 풍의 '처음 이별하는 듯'과 뮤지컬 스타일의 'White wine', 일렉트로닉 뮤직을 선보인 'Do it', 그리고 함춘호가 기타를 연주한 컨트리와 블루스 넘버 '느끼는대로만'은 다양한 색의 물감으로 자신의 음악 스케치북을 화려하게 장식하듯 다채롭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려는 아티스트로서의 욕심이 발현된 이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부분.
김완선은 '처음 이별하는 듯'과 'White wine', 그리고 실연의 감정을 담은 '애수'에서 곡 만들기와 노랫말을 풀어내지만 듣는 사람들은 그 감성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부유(浮游)한다. 그의 가사는 한 걸음 뒤에서 다가오듯 감정이입이 쉽지 않고 멜로디는 불규칙 바운드마냥 편치 못하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Return Seventten >은 김완선 최고의 음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삐에로처럼 우릴 보고 웃던 김완선은 지금, 홀로 뜰 앞에 서서 나만의 것을 가지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그를 통해서 웃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것을 갖고 싶어 한다. 아마도 시간이 쌓여서 세월이 되고, 그 흐르는 세월은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드나보다.
-수록곡-
1. 서른의 노래 (작사 : 한경혜 / 작곡 : 손무현)
2. 모차르트 듣는 여자 (한경혜 / 원상무)
3. 처음 이별하는 듯 (지완이 / 김완선)
4. Seventeen (원태연 / 원상우)
5. 산책 (지완이 / 원상우)
6. 정말이지 나는 (김현철 / 손무현)
7. 시간을 삼켜도 (임석무 / 원상우, 임석무)
8. White wine (원태연 / 김완선)
9. 애수 (김완선 / 손무현)
10. 느끼는 대로만 (원태연, 원상우 / 원상우)
11. Do it (Chris Williams / 원상우, 임석무)
프로듀서 : 원상우, 임석무, 김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