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잃은 것들
이승환이 겪어 온 연속적인 삶에서 지금의 '때'를 한 마디로 말하면 '흉(凶)'이다. 드림팩토리를 꾸리고, 라이브의 새 장을 열었으며, 뒤늦은 결혼의 축복이라는 '길(吉)'을 다 지나쳐 왔으니 행운의 여신이 지칠 만도 했다. 결국 이승환은 드림팩토리의 경영선에 물러나 다른 소속사로 들어가야 했고, 결별의 아픔에 침묵해야만 했다. 그는 더 이상 내일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잃고, 살림도 잃었다. 그래서 이승환은 이번 9집을 스스로 '기둥뿌리 뽑아 만든 앨범'이라고 표현한다. 더 이상 CD라는 매체로는 음악이 제작되기 힘들 것이라고까지 말하니, 나중에 어떻게 되든 지금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 부었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이런 절망감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놓아버린 자의 초연함 덕분이다. 그래서 < Hwantastic >은 '상실의 앨범'으로 규정된다.
그럼에도 한 번만 더 내치라고 말하면 지독히도 잔인한 처사일까. 의심의 여지없는 이승환 표 발라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는 아직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바로 그의 든든한 팬덤이다. '천일동안'의 스케일을 답습하면서 더욱 슬픔을 짜내는 소리로 자신의 아픔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이 노래는, 그만을 사랑하는 열혈팬들과 함께 한바탕 울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되는 정도의 곡이다.
발전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존의 타이틀과 다를 것이 없다. 비 온 뒤 굳은 땅이 불혹의 나이에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힘들어하는데도 울림이 없다. 어쩌면 항상 음악만을 위해 살아 온 것 같은 그가 더 아끼고자 했던 것은 팬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 Hwantastic >이 온전한 '상실의 앨범'이 되려면 대중마저 버렸어야 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가 '마흔 즈음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가 얻은 것들
대표곡의 아쉬움이 < Hwantastic >을 미완으로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완벽에 대한 지향과 그 탄탄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벡(Beck)의 아버지인 프로듀서 데이비드 캠벨(David Campbell)의 손을 빌리고, 사운드의 질을 높이며, 진지한 구성으로 일관한 본 작은 근래 보기 드문 반(反) 인스턴트 앨범이다.
특히 록과 힙합, 그리고 뮤지컬적인 분위기가 만난 '건전 화합 가요'나 국악 연작 '남편', '달빛 소녀', '소통의 오류', 담담하게 일상적인 슬픔을 노래해 가장 눈길이 가는 웰-메이드 팝 '울다', 피아노와 브라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성의 록으로 이끄는 'Rewind', 웅장하고 다이나믹한 'Pray for me' 등이 주목할 만한 곡이다. 그가 놓친 음악 외의 것들 덕분에 이만한 집중력과 짜임새를 얻어낼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또한 내용의 진솔함에도 긍정표가 간다. 한창 핑크빛 꽃물이 들던 때의 '사랑하나요!?'나, 그만의 장난끼가 넘치는 '삼촌 장가가요'같은 가벼운 노래는 한 곡도 없어 이승환의 무거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소통의 오류'를 말하지만, 대중은 이런 부분에서 어느 정도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승환을 추종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 Hwantastic >에 한 번쯤 귀 기울이게 만들 수 있는 강점이 된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회를 사는 한, 누구에게나 신비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팬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과의 접속이 가능했으리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도 존재하는 법. < Hwantastic >이 일장일단의 앨범이니만큼 앞으로 그의 음악생활과 삶에 대한 태도가 더욱 주목된다. 9집 활동과 곧 시작되는 '무적' 투어가 그의 삶을 다시 눈부시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위태로운 음악계와 오늘만을 사는 그의 시선이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뮤지션을 아끼는 우리는 아직 긍정의 힘을 믿는다.
-수록곡-
1. 이 노래 (작사: 이승환 / 작곡: 전해성)
2. 그늘 (이규호 / 이규호)
3. 건전 화합 가요 (feat. 45RPM)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4.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5. 남편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6. 달빛소녀 (feat. 정성미)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7. 소통의 오류 (이승환 / 이승환)
8. 울다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9. 손 (이승환 / 황성제)
10. Rewind (이승환 / 3RD PLANET)
11. Pray for me (이승환 / 이승환, 조삼희)
12. We are the dreamfactory (feat. Jessica H.O) (이승환 / 3RD PLANET)
13. No pain no gain (feat. JP) (이승환 / 이승환, 황성제)
프로듀서: 이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