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락의 댄스 공산품이 범람하는 시점에 발라드라면 타이밍은 나쁘지 않다. 자연스럽기로는 이번 신보의 ‘A/S’나 ‘롹스타 되기’가 말해주듯 롤링 펀치력이 압도하는 록 성향의 곡이 더 우월하지만 굳이 발라드 싱글로 무장한 것은 ‘천일 동안’과 ‘당부’ 이래로 굳힌 이승환의 단골 상업적 안전전략의 재현이다. 살짝 걸리는 대목(‘그렇게’, ‘어떤 눈물로도’, ‘나 없는 널’, ‘그것만으로도’)이 있긴 해도 오랜 캐리어를 담보하는 보컬 솜씨는 인색한 평가를 차단한다.
정지찬의 곡과 편곡도 괜찮고 연주도 급이 높다. 여러 각도에서 봐도 수준급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왜 신선함이 청각을 관통하지 못하는 느낌일까. 그것은 여전히 ‘울고 짜는’ 패턴에서 반의반이라도 앞서는 트렌드세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후배 발라드진영을 단박에 ‘음악셔틀’ 화(化)할 뭔가 각별한 한방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승환의 승리가 될지는 몰라도 발라드의 승리는 되지 못한다. 아직 대중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남아있음을 반영한 앨범을 내준 것만으로도 최고지만 최고는 좀 더 많이 내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