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을 받아든 순간 빼어난 자태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음악도 음악이거니와 < Cycle >, < His Ballad >, < Long Live Dream Factory >와 라이브 앨범 < 무적전설 > 등의 패키지 디자인과 아트워크를 통해 한국 음반 디자인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그가 아니었던가. 독특하고 성의 있는 패키지에 '20주년 기념 환타스틱한 친구들'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있으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은 물론 경외감마저 든 것이 사실이다.
< 20th Anniversary Hwantastic Friends >는 이승환과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신나는 파티 같은 음반이다. 다른 가수들이 자신의 10년 혹은 20년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흔히 행하는 '인기곡 모음집' 발매 대신에 그는 그동안의 히트곡을 동료 뮤지션들과 재구성해 팬들 앞에 내놓았다.
수록곡 가운데 관심이 가는 것은 단연 그의 두 신곡 'My fair lady'와 '좋은날 Ⅱ'. 언뜻 단순한 사랑노래로 보이는 'My fair lady'는 사실 그동안 애정을 보내준 팬들에게 보은하기 위한 노래다. '너의 기쁨 안아 줄 내 품을 빌려줄 거야, 너의 슬픔 담아 낼 예쁜 마음씨도 준비할게' 같은 구절의 가사를 통해 20년을 지나오며 어느덧 소녀에서 숙녀로 변모한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영원한 동행을 다짐한다. 이런 메시지는 정확히 곡의 중반부터 시작되는 스트링 사운드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더욱 장대하고 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좋은날 Ⅱ'는 이승환이 그동안 고생한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따스한 격려다. 가사에도 나와 있듯 '열심히 살은 갸륵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인 이곡은 발랄한 키보드와 흥겨운 브라스 사운드가 자축파티 분위기를 이끈다. 거기에 더해진 장난기 가득한 이승환의 보컬과 어린이 합창단의 다채로운 목소리는 곡의 감정을 풍성하고 구성지게 표현해냈다.
상기한 두 곡을 지나고 나면 이승환은 어느새 헌정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다. 본격적으로 이승환 자신이 흐뭇함을 느낄만한 나머지 수록곡들의 향연에는 동료 뮤지션들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유희열과 넬(Nell)의 김종완, 윤도현, 더블유 앤 웨일(W & Whale)의 보컬 웨일(Whale), 투에이엠(2A.M.)의 조권, 아웃사이더, 엠씨 스나이퍼, 클래지콰이, 버벌 진트, 이하늘, 타이거 JK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재창조한 곡들은 파격 혹은 새로움 그 자체다.
윤건의 보컬과 타이거 JK, 이하늘, 버벌진트, 션투슬로우(Sean2Slow), 제이 권도(J-Kwondo)의 랩을 통해 새롭게 옷을 입은 수록곡 '체념을 위한 미련'이나 윈디 시티 (Windy City)가 독특한 레게 분위기로 다듬어낸 '크리스마스에는', 보컬 웨일(Whale)과 조권이 참여해 일렉트로니카 곡으로 다시 태어난 '덩크슛', 윤도현과 피아, 노브레인의 이성우와 래퍼 김진표의 독특한 조합이 인상적인 강렬한 록 넘버 '붉은 낙타' 등은 앨범에서 특히 인상적인 트랙이다.
앨범의 곡들은 힙합, 일렉트로니카, 록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었음에도 전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는 유연하면서도 치밀한 멜로디와 구성이 돋보이는 오리지널 곡들의 뛰어난 품질 덕분이다. 간혹 원곡에 비해 깊은 맛이 덜 살아난 곡들도 눈에 띄지만, 20주년을 기념하는 측면에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다.
그의 다사다난했던 20년을 단 10곡으로 담아내기엔 많이 부족하다. 팬들은 좀 더 풍성하고 다양한 곡들로 기념 앨범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이 앨범은 온전히 이승환에게 바치는 작품이며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10곡으로 채워져 있기에 이 점을 비판하고 싶지 않다.
오랜 기간에 걸쳐 끊임없이 대중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해 온 그다. 그 자신이 20주년 기념 앨범을 간소하게 차리고 싶다면 이번만큼은 그 뜻을 존중해 줘야 한다. 그가 원한 것은 업적을 기념하고 소회나 털어놓으며 질질 끄는 지루한 시간이 아니다. 짧지만 강렬하고 폼 나는 축하 파티다. 게스트 면에선 더 없이 화려하지만 의외로 절제의 미덕이 느껴진다. 소박하면서도 거장의 겸손함이 묻어나는 기념앨범이다.
-수록곡-
1. My fair lady - 이승환 Feat. 서우 (작사: 이승환 / 작곡: 이승환, 황성제) [추천]
2. 좋은 날 Ⅱ - 이승환 (이승환 / 이승환, 고영환) [추천]
3. 심장병 - 아웃사이더, MC스나이퍼 with 호란 (조은희, 아웃사이더, MC스나이퍼 / 이승환, 황성제)
4.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 클래지콰이 프로젝트 (오태호)
5. 체념을 위한 미련 - 윤건, Sean2Slow, Verbal Jint, J-Kwondo, 이하늘, 타이거 JK (이승환, Sean2Slow, Verbal Jint, J-Kwondo from 45RPM, Smash from 45RPM / 이승환) [추천]
6. 내가 바라는 나 - 유희열, 김종완 from Nell (이승환)
7. 덩크슛 - 조권, 웨일 (김광진, “Hitman" Bang, 백찬, Pdogg / 김광진, “Hitman" Bang, 백찬, Pdogg, Miss Kay)
8. 텅 빈 마음 - 윈터플레이 (류화지)
9. 크리스마스에는 - 윈디 시티 (이승환) [추천]
10. 붉은 낙타 - 윤도현, 피아, 이성우 from 노브레인, 김진표 (이승환 / 이승환, 유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