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림 음악을 다시 생각하다
자우림은 대체로 사랑받는 밴드다. 그러나 마니아들에겐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 나가도 '밴드 음악'을 틀려면 자우림이 필요했고, 공연장에서는 1만 명이 다 아는 노래기에 신나게 뛰고 따라 불렀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CD장 앞에 섰을 때, 자우림의 음반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여러 사람과 소통하기엔 그렇게 좋던 음악이, 집에 와 앨범으로 세심히 들어보면 왜 이리 재미가 없던지. 하지만 이번 앨범을 들으며 자우림의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쉽게 지나쳤던 장점이 이제 조금씩 귀에 들어온다.
일단 < Ruby Sapphire Diamond >는 수록곡들의 색깔이 무척 다양하다. 워낙에 다 달라서 쉽게 하나의 의미망으로 좁혀지지 않아, 제대로 파악하기까지 세 번을 들어야 했다. 1번 'Oh, honey!'부터 마지막 트랙 'Blue marble'까지 일절의 반복 없이 다른 장르, 다른 느낌, 다른 색깔로 채워졌다. 백화점식 나열이지만 막상 하려면 어려운 것이 또 이 작업이다. 7집을 거치는 동안 장르 스펙트럼과 기본기가 상당히 쌓였구나 느끼고 새삼 놀랐다.
다양한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곡을 정말 다양하게 잘 소화했다. 특히 김윤아의 보컬은 곡의 분위기가 바뀔 때마다 다채롭게 보이스 컬러를 바꿔 각각의 노래에 강한 개성을 부여한다. '반딧불'과 'Drops', 'Carnival amour'와 'Blue marble'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안다. 귀여움, 성숙함, 절절함, 화사함 등, 카멜레온처럼 감성을 체인지하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 앨범을 통해 김윤아의 보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성과는 '하하하쏭'의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확장,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자우림은 '하하하쏭'에서 마치 다섯 살 꼬꼬마 같이 노래를 불러 빈축을 샀다. 하지만 이번 앨범의 첫 싱글 'Carnival amour'에선 김윤아의 보이스 컬러도 더 안정되었고, 편곡도 더 풍성하고 세련되어졌다. 스카(Ska)로 쿵짝쿵짝 거리기만 하던 예전에 비하면 재미와 활기 측면에서도 훨씬 즐겁고 스펙터클해졌다. 곡의 영감을 영화 < 록키 호러 픽쳐 쇼 >에서 얻어왔다고 하는데, 정말로 신나는 난장 분위기가 잘 표현된 것 같다. 주류 가요 음반에서 듣기 힘든 꽉 찬 브라스 소리도 신선하다.
타이틀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도 고르게 좋다. 여기서 음악 감독인 이선규, 김윤아의 기복이 심하지 않은 탄탄한 음악 실력이 드러난다. 특히 귀엽고 달콤한 것에 대한 예찬가 'Drops', 애틋한 가성과 아련한 플루트 선율이 인상적인 '옛날', 화창한 봄날 같이 밝지만 한 편으론 깊은 우수에 찬 곡 'Something good', 20세기의 문화 상징들을 추억한 '20세기 소년소녀'는 유독 마음에 든다. 기타 이선규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Poor Tom'도 흥미롭다.
'옛날', '반딧불', 'Blue marble' 같은 정적인 곡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들린다. 자우림은 늘 애들 '놀이' 같은 곡만 부르고, 진중하더라도 쉽게 잘난체로 보여 감동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옛날'의 순수하고 애틋한 보이스를 들을 땐, 잠시 생각을 멈추고 멍하니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이바디의 '꽃놀이'와 함께 올해에 들은 가장 인상적인 발라드 중 하나였다. 앞으로는 이런 노래를 더 많이 불렀으면 좋겠다.
자우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단지 시간이 흘러서일까. 하도 오래 음악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젠 익숙해져서 자연히 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된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Ruby Sapphire Diamond >는 캐릭터와 팀 컬러를 발전시켰단 측면에서, 리드 보컬의 다양한 보이스 컬러 측면에서, 고르게 뛰어난 수록곡들의 평균 퀄리티 측면에서, 충분히 좋은 앨범이다. 특히,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발라드 수작들은 자우림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게 만든다. < Ruby Sapphire Diamond >에는 분명 다른 마니아들의 마음도 열리게 할 잠재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우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일단 음악적으로.
-수록곡-
1. Oh, honey!
2. 幸福(행복)한 王子(왕자)
3. Something good
4. Drops
5. 20세기 소년소녀
6. 반딧불
7. Carnival amour
8. Love rock'n roll
9. 27
10. 옛날
11. The devil
12. Poor Tom
13. Blue mar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