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인터뷰

크라잉넛

by 임진모

2006.08.01

군에서 제대하면 아무래도 전보다 정돈되고 점잖아 보이는 것이 보통이건만 우리의 펑크악동들은 나이 30살이 됐어도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그들은 사진촬영이건 대화 시간이건 여전히 20대 초반 피 끓는 청춘인양 말달렸다. 7월12일 서울 신촌 홍대 부근의 한 식당에 마련된 인터뷰 장소는 완전히 이판사판, 아수라장. “술 마시면서 (인터뷰) 하죠!”

김인수(아코디언, 건반)를 제외한 멤버 박윤식(보컬) 이상면(기타) 한경록(베이스) 이상혁(드럼)의 전원 동시 제대 이후 1년 반 만에 들고 온 신보 < OK목장의 젖소 >에 수록된 곡 '마시자'의 가사 '부어라 마셔라 노래를 부르자!'를 그대로 현장에 옮겨 놓은 듯했다. 알코올 인터뷰였다. “새 앨범 나오고 매체 인터뷰가 많아지면서 술을 자주 마시게 되니까 기분 좋은 거 있죠.”

멤버들이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라서 본디 유쾌한 팀이었지만 최근 크라잉 넛은 더더욱 즐겁고 들떠 있다. 신곡 앨범으로 치면 무려 3년 반 만에 새 음반을 출반한 것도 그렇지만 전원이 '흥겹게 만든 앨범'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처럼 과거와 달리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재미를 느끼며 녹음했다는 만족감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제대 직후에 “자연스러운 호흡이 가져오는 조건반사적 앨범이 될 때까지 일단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했었다.

크라잉 넛이 돌아왔다. 그 사이, '드럭'이라는 음악창고에서 그때까지 국내에선 생소하기 그지없었던 펑크를 실험하고 '말달리자'를 국민가요 격으로 상승시키면서 달려온 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넘겼다. 마지막 상륙한 서구 장르라는 펑크를 우리 것으로 만든 공신은 이제 무엇을, 어떤 음악을 해야 할까. 당연히 따라야 할 것 같은 고민도 그들의 생래적 단순함에 함몰된다. “크라잉 넛이란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음악이라면 다 하고 싶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끝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유쾌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단 1초의 쉼 없이 속사포로 답변을 토해냈다. 심지어 예민한 성질의 질문도 그들 앞에선 평범한 것으로 전락했다. 인터뷰에 분명 임했으면서도 철저히 인터뷰 형식을 유린한 자리. 그저 술잔을 들어 건배하기에 바빴다.

4집 <고물라디오>를 군대 가기 전인 2002년 12월에 냈으니까 신보는 3년 반 만에 내는 건데 부담은 없었습니까.
한경록: 솔직히 4집은 아쉬웠어요.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시간에 많이 쫓겼죠. 요번에는 여유 있게 하고, 앨범에 퀄리티를 부여하자고 맘먹었어요. 녹음 전에 연습을 많이 해서 가기로 했죠.

이상면: 즐기면서 했어요. 그런 만큼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혁: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것은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는 거죠. 가장 후회가 없는 앨범이에요.

박윤식의 보컬은 전보다 깨끗해진 것 같습니다. 이번 5집의 하이라이트는 박윤식의 보컬이라는 평도 나옵니다.
가장 시간이 부족한 것은 언제나 보컬이었죠. 악기 녹음 다해놓고 마지막에 보컬을 녹음하잖아요. 전에는 하루에 3곡을 불렀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은 여유와 준비시간을 충분히 가져 신곡이 몸에 밴 상태였죠. 수없이 부른 뒤 녹음실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다른 멤버들에게 박윤식 보컬이 어땠느냐고 묻자 이상혁은 “각각의 노래 분위기 파악을 잘 했어요.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불렀죠. 많이 발전했어요.”라고 답했다)

녹음을 앞두고 박윤식씨는 주로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아일랜드 전통 컨트리음악과 네오 개러지 펑크를 많이 들었어요. 아이리시 펑크라고 할 1980년대 그룹 포그스(Pogues) 음악이 특히 끌렸지요. 그게 신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편하게 부르는 거요.

박윤식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한경록은 이 얘기는 빼놓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붙였다. “포그스의 셰인 맥고완(Shane MacGowan)은 '27년 동안 한시도 술에서 깬 적이 없다'는 사람이죠. 흐흐흐.” 그는 아이리시 민요는 권주가(勸酒歌)가 굉장히 많아서 좋다고 말하면서 거기에 사용된 밴조와 휘슬이 신선하게 느껴졌으며 그 알코올과 사운드의 조우가 신보의 '마시자'와 'My world'에 영향을 주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크라잉 넛에게 중요한 것은 알코올과 사운드의 퓨전 이상으로 '펑크와 비(非)펑크음악의 결합'일 것이다. 이것은 과연 그들이 언제고 '말달리자'와 같은 직선형 펑크만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압축되는 장르의 진화와 관련한 예민한 대목이다. 그들은 1999년의 2집 <서커스매직 유랑단>에서 이미 '장르탈출'을 개시했지만 그들 간의 논란과 갈등이 여전히 계속될 정도로 이 문제는 부담스럽다. 펑크의 순수성에 헌신하느냐, 아니면 그것을 깨고 외연 확대로 치닫느냐.

김인수는 장르확장에 따른 정체성과의 조정이 당면 과제임에 틀림없지만 그나마 밴드에 맞는 곡을 고르고 추려서 했기 때문에 녹음 중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서서히 구체화하고 있는 장르 폭 넓히기가 만만할 리는 없다. 이번에 하나의 벽처럼 다가온 것이 '물밑의 속삭임'이란 곡이었다. 여기서 그들은 트로트의 거성 심수봉을 초빙, 깜짝쇼를 방불케 하는 큰 모험을 감행했다. 크라잉 넛과 심수봉의 하모니는 누가 봐도 어리둥절한 것이다.

'물밑의 속삭임'을 녹음하면서 심수봉씨를 염두에 둔 것은 놀랍습니다. 들어보니 어울림이 괜찮던데요.
이상면: 지난 3월에 결혼한 제 아내 휘루가 쓴 곡인데요, 한이 서려있는 소프트 록 성향의 곡이라서 심수봉선배님이 필요했어요. 사실은 잘 안 어울리는 곡이죠. 조율이 어려웠어요.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한 휘루는 록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해금을 연주하며 현재는 작사 작곡을 활동하고 있다)

박윤식: 보컬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습니다. 이상혁: 놀랐던 것은 심수봉선배님의 자세예요. 뒤로 빠져주려는 거요. 윤식이의 록 보컬에 맞춰주시려고 연구하는 모습이 진짜 멋있었어요. 성심성의껏 해주셨죠. 심지어 양에 안차셨던지 나중에 다시 하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완벽을 기하려는 치열한 음악자세에 감동받았습니다.

신곡 가운데 '순이 우주로' '튼튼이의 모험' 'My world' 등도 앞으로 크라잉 넛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봐요. 새로우면서도 여전히 크라잉 넛과 같은 느낌말이죠.
이상혁: 그래요. 기존의 크라잉 넛 스타일과는 확연히 달라요.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죠. 분명히 새로운 시도인데 낯설지 않은 맛, 그 두 가지를 얻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크라잉 넛이라는 그릇만 지킨다면 모든 음악이 우리의 공략 대상이에요.

이번 16곡 중에 타이틀곡인 '명동콜링'이나 현재 반응이 좋은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한경록씨가 쓴 곡이 7곡이나 됩니다. '크라잉 넛'의 에너자이저라는 말처럼 점점 경록씨의 곡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요.
이상면: 경록이가 사람을 많이 만나고 보고 그래서 감성이 풍부해요. 전 이번에 결혼해서 곡 만들 시간도 부족했고... 경록이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어요. 1집부터 이번 5집까지 한결같죠. 특히 가사에서 두드러지는데요, 저는 단어가 무작위라면 경록이는 엄선한 어휘들이라고 할까요. 수록곡 '룩셈부르크'가 말해주죠. 그게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것 같아요.

이상혁: 무엇보다 경록이는 현재 곡을 쓰고 만들려는 의지, 창작 에너지가 충만해요. 곡의 대중성을 확보하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매니저가 처음 제게 마스터링 전의 음원을 들려주면서 이번은 홍보 측면에서 타이틀곡이 없다고 했거든요. 확 꽂히는 곡이 없다는 거죠. 만약 그렇다면 우리 음악계가 타이틀곡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약점일 될 수 있는데.
이상혁: 그것을 반대로 얘기하면 좋은 곡들이 많다는 뜻이죠. 저는 그래서 이번 음반이 오래 갈 것 같습니다. 타이틀곡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죠.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신보는 제대 후 1년 반 만에 나온 것이죠. 보통 같으면 제대 후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로 바로 음반을 내는데 크라잉 넛은 오히려 공연에 치중했어요.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상면: 제대 후 전국 순회공연도 갖고 아닌 게 아니라 콘서트를 많이 했죠. 사실 드럭 때도 그랬지만 공연을 하고난 뒤에 앨범을 내는 게 정상 아닌가요.

한경록: 공연장에서 해보면 바로 곡에 대한 반응을 체크할 수 있죠. 좋은 곡은 공연 현장에서 바로 반응이 오죠. 자신감도 붙구요. 공연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란 엄청나죠.

박윤식: 공연의 자신감이 앨범을 만드는데 편안함으로 반영된 것 같아요. 보컬이 특히 그랬습니다. 신보는 공연으로 다져진 앨범이라는 점이 맘에 듭니다.

김인수씨는 이번 앨범을 어떻게 생각해요.
딱 5집 느낌이 나요.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묻자) 외국이나 우리나 나름대로 위치를 굳힌 밴드들의 5집은 다 괜찮지 않나요.

다른 멤버들도 이번 앨범에서 자랑할만한 것을 간단히 말한다면.
박윤식: 멤버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 앨범이죠. 모두들 곡과 연주에 있어서 자기 것으로 소화가 됐다고 봅니다.

한경록: 저도 그래요. 역할 분담이 잘 됐어요. 서로 간 알게 됐죠. 이제 뭔가 음악으로 들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이상면: 홈 레코딩을 처음 시도한 앨범이기도 하죠. '순이 우주로'는 집에서 믹싱까지 한 곡이죠.

이상혁: 음악을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죠. 속 편했어요.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각자 신보에서 추천할 곡을 꼽는다면. 자기가 쓴 곡을 대도 좋습니다.
김인수: '뜨거운 안녕'이요.

이상혁: 군대 있을 때 집이 그리워서 쓴 곡 '순이 우주로'가 색달라서 좋아요.

한경록: 전 '오줌싸개 제네레이션'입니다.

박윤식: '마시자'와 'My world'가 맘에 듭니다.

이상면: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것을 묘사한 '뜨거운 안녕'과 연주에 있어서 노력을 많이 한 '순이 우주로'를 꼽겠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럼 수록곡 거의 전부네?”했더니 크라잉 넛은 “거봐요. 신곡 전부가 좋은 곡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했다.)

참 그런데 앨범 타이틀인 OK목장의 젖소는 뭘 가리키는 겁니까? 앨범 커버도 젖소를 내걸었던데.
이상혁: OK목장하면 영화제목처럼 흔히 다음에 결투라는 언어가 연상되죠. 그런데 사실 목장은 젖소가 나와야 되잖아요.

한경록: 젖소는 젖을 물리고 우유를 공급하는 박애의 상징이죠. 결투와는 반대되는 개념도 암암리에 작용한 것 같습니다.

김인수: 다 떠나서 그냥 재미있잖아요.

마지막으로 크라잉 넛이 꿈꾸는 밴드가 있다면.
이상면: 아무래도 우리와 연결되는 록 밴드는 펑크의 전설이라고 할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클래시(Clash)겠지요. 그 중에서도 클래시는 펑크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음악을 했죠. 전 진정으로 크라잉 넛이 클래시와 같은 밴드가 되기를 바랍니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