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10대들은 윤상이라는 이름에 생경함만을 느끼겠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선 세대들은 그의 신보가 곧 복음으로 여겨진다. 후자에 해당하는 이들에게는 윤상이 추구해왔던 전자음의 몽환과 동시에 다시 살아난 멜로디 라인으로부터 그의 초기 음악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쾌감이 추가될 수 있을 듯하다.
지난 수년간 그의 음악은 다소 대중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단지 많은 사람들에게 덜 익숙한 음과 박자, 악기가 더 사용됐을 뿐,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대중을 배제한 채 스스로의 음악적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한 시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적 영역을 구축한 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악만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멜로디를 등한시한 곡을 쓰기란 쉽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선율에서 멀어지는 만큼 그의 팬들로부터의 거리 또한 비례해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효과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그는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음악에서 탈피한 다양성을 담보한 음악적 외톨이의 길을 선택했다.
신시사이저를 내세운 일렉트로니카의 향연은 6집에서도 계속된다. 타이틀곡 '그 눈 속엔 내가'에 덮인 신시사이저는 음에 강약의 이완을 조절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며 그 뒤에 깔린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듬은 경쾌한 춤곡과 같이 느껴지게 한다.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전자음 속에 그의 목소리가 더욱 청아하게 들린다.
두 번째 트랙 '소심한 물고기들'은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여간해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와 같은 매체에 출연하지 않는, 설사 출연하더라도 크게 어필하지 않는 숫기 없는 그가 바로 떠올려진다. 몇 번 헛기침을 한 뒤에야 나오는, '할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하는 가사가 어딘지 혀끝에 맴도는 하고 싶은 말들을 음악을 통한 방법 외에는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그가 물고기가 되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수록곡 중 '영원 속에'에는 윤상의 초창기 모습이 가장 짙게 배어난다. 낮은음이 잔잔히 깔린 건반 위에 서정적인 가사 그리고 가만가만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이별의 그늘'에서 찾을 수 있는 윤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진보적인, 또는 매번 변화했던 새로움 속의 윤상보다는 온전히 목소리에만 의지한 까닭에 보컬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특별한 여건을 조성한다.
'사람들에게 잊히면 어쩌지?'하면서 히트곡에만 목메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영역을 고수한 윤상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찾은 정체성을 놓치지 않되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은 고마운 앨범, 6년이란 세월이 쌓은 그리움의 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수록곡-
1. 떠나자 [추천]
2. 소심한 물고기들 (작사 박창학/ 작곡 윤상) [추천]
3. 그때, 그래서, 넌 (박창학/ 윤상)
4. 그땐 몰랐던 일들 (박창학/ 윤상)
5. 입이 참 무거운 남자 (박창학/ 윤상)
6. 편지를 씁니다 (박창학/ 윤상)
7. 그 눈 속엔 내가 (박창학/ 윤상) [추천]
8. 영원 속에 (박창학/ 윤상) [추천]
9. 기억의 상자를 열다 (박창학/ 윤상)
10. 그땐 몰랐던 일들-아이들 (박창학/ 윤상)
11. My cinema paradise (박창학/ 윤상)
12. 낯설지 않은 꿈 (박창학/ 윤상)
13. Loop 1 for an end (작곡 윤상)
14. Loop 2 for reboot (작곡 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