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그녀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늘 '한류의 개척자'였고, 그 안엔 끝도 없는 대중의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에 부응하듯, 아니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듯 잇달아 강한 이미지와 완벽한 안무로 자신을 치장해 온, 보아의 커리어는 한마디로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에 올인해야 했던' 가혹한 삶의 연속이었다. 순수한 꿈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했던 '아틀란티스 소녀'였고, 여성중심의 사회를 위해 'Girl's on top'을 외치기도 했으며, 'Hurricaine Venus'로 환생해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그 속에서 '인간 보아'의 자아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신작은 그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다. 처음으로 이루어진 각종 콘셉트와 노래 속 캐릭터에 묻혀있던 '인간 보아'의 발굴 복원 작업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Only one'이 보아의 자작곡이라는 것은 사실 부수적인 문제다. 주위의 부담을 전부 끌어안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좀 더 앞줄에 두겠다는 강단의 발로가 전반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 포인트다. 최근 논란거리였던 립싱크무대만 봐도, 정확히 자신의 한계를 알고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무대에서 구현해 내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고자 했던 예전의 보아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이처럼 비디오에서의 목표가 완벽한 시각적 만족이라면, 오디오 측면에서는 오래도록 들을 수 있는 '감상'의 기반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계속해서 타이틀로 내걸었던 자극적인 'SMP'의 비중을 줄였고, 수록곡은 7곡으로 줄임과 동시에 밀도를 높였다. 단숨에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만한 에너지를 분출하지는 않지만, 대신 좀 더 보편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실어내 쉬이 질리지 않을 '정적인 역동성'을 확보해냈다.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여유이자 안도감이다.
애티튜드의 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도모한다. 무엇보다 전반적으로 자전적인 이야기가 기반이 된 덕분에 좀 더 설득력이 부여된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대부분의 곡들이 기존에 해왔던 상투적인 스타일임에도,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멜로디를 얹고 진솔한 목소리로 매듭을 지었다는 점이 다시 한 번 꺼내들어야 하는 이유를 가져다준다.
'날 따라오는 날 바라보는 네 시선 눈빛 그 모든 것들이 날 얼게 만들어'라는 노랫말로 후배들에게 가수로서의 현실적인 고충을 이야기하는 'The shadow', '뾰족해 못난 네모난 바퀴 역경은 깎아내면 둥글겠지'라고 되뇌며 그간의 고통을 투영해내는 '네모난 바퀴'는 그녀가 불렀기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트랙들이다. 여기에 'The top'을 통해 정상이란 결국 허상이라는 역설을 둔탁한 비트와 낙차 큰 선율로 읊어 내려가며 절정의 순간을 야기한다. 다만 신스 음이 앞 러닝타임과의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One dream'은 생략해도 좋았을 부분.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가 여운이 남아야 할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최후의 감흥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다. 베테랑 아이돌로서의 모범사례로서는 적합하지만, 초보 뮤지션으로서의 변신으로서는 미흡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는 남들과의 경쟁을 통해 얻는 칭호지만, '유일'이라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얻는 훈장이 아닐까 싶다. 10년의 세월 동안 '정상'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기꺼이 자신의 짐이자 의무로 받아들인 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왔던 힘겨운 나날을 거친 끝에 'No.1'은 'Only one'이 될 수 있었다. 영광이라는 이름의 아픔과 외로움을 홀로 이겨내고 이제 겨우내 숨고르기를 시작한 보아. 그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향하는 길이 어딘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치열함을 잠시 내려두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반갑고 다행스럽다. 대중과의 관심에서 반 보 거리를 둔 지금, 13살의 아이돌을 거쳐 27살의 뮤지션으로 다시금 재출발할 절호의 타이밍을 그녀는 맞고 있다.
-수록곡-
1. Only one [추천]
2. The Shadow
3. 네모난 바퀴(Hope) [추천]
4. Not over U
5. The top [추천]
6. Mayday! mayday!(너에게 닿기를 간절히 외치다)
7. One dream
8. Only one(Inst.)
9. The shadow(Inst.)